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
인천대학교
서양화
석사
인천대학교
서양화
학사
그림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모든 작업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기억에서 감각으로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방편이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잔상(殘像)이다.
잔상은 나의 실재에 대한 재현이며, 실재 대신이 아니라 실재를 위한 지원이다.
전통적인 회화기법에 의한 조형적인 작업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그림의 바탕으로서 드리핑(dripping)과 우연적이고 감각적인 효과를 선택했다. 그것에 담긴 무의식적 행위들과 실재를 살릴 수 있는 작업방식으로 나만의 그림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자동기술적인 우연성이 그림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실재가 우연의 보조수단이 되어 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결과로서 작품은 우연성이 강한 의식의 명료성이라는 하나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나에게 있어 잠재된 무의식만큼 진실한 것은 자연이라 하겠다. 자연의 형상은 극단적인 추상으로서의 시도가 있을 때 나타났으며, 그러한 그림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으로 회귀란 풍경 자체를 모사하는 일에 의미를 두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가시적인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각성의 획득을 위한 탐구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림에서 자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 끌어내고 있는 추상적인 방향으로의 의식적, 무의식적 편향이다. 구상과 추상 세계의 공존, 추상과 형상세계의 교체,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림이 갖는 기본적인 특성은 여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상성에서 그 대상을 지워가는 것, 그러면서 그 대상성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작업 방법이다. 결국, 형상성과 추상성을 공유하면서도 어떤 일반 개념이나 범주 적용에서 자유롭다는 말이 여기서 성립될 수 있다. 추상을 지향하기에 모던하고, 거기에 형상까지 되살아나 포스트모던하다는 말이 적용할 수 있다면 나의 그림이 가지는 “다양성”이라 할 이질적 요소의 공존은 서로 배타적으로 상반되는 개념의 적용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나에게 모던과 포스트모던은 둘 사이에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가 해당하며, 그러한 나의 회화는 이것 또는 저것이라는 양자 구별 자체를 넘어서길 바란다.
“잠재된 다양성의 잔상”이란, 과연 내가 표현하는 그림이란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혼돈된 무의식과 의식 그 경계의 상징성을 작업의 주제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드리핑 기법에 의한 화면이 자동 기술적이고 우연적인 표면 위에서 어느 순간 새로운 풍경을 찾아냅니다. 일종의 우연적인 풍경 내지는 암시적인 풍경이라고 부를 만한 그 풍경 위에 저는 특정의 모티프를 그려 넣습니다. 이것은 이미지의 선별적인 기록물들 일상의 사진, 신문, 잡지, 인터넷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견본화하고 다시 재조합하여, 기억이나 감각들을 끄집어 내며 그것을 인간의 변형된 욕망에 대입시킵니다.대개는 자신의 가족사 내지는 행복한 일상의 풍경들과 미술사적인 욕망의 지표들(여러 경로로 패러디되고 특히 오마주의 대상으로서 등극한 점이 그 증거일 것), 대중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욕망의 지표들입니다. 나아가 저의 주제 의식과 관련해 볼 때, 대상 자체라기보다는 그 대상이 어떤 문맥 속에 배치되는가를 살피는 일이며, 따라서 그 의미마저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대상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은 대상의 고유한 성질에 속한다기보다는 그 대상이 놓이는 방식, 곧 문맥입니다.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세계를, 회화 작업을 통해 창조해 냅니다. <변형된 욕망-까마귀 나는 들판 그리고 바람(2014)>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의 작품과 묘한 연관성을 드러내며, 자신만의 감각으로 표현된 작품이 됩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관람자 자신의 내적인 모습으로 침투하여 새로운 감정을 유발하게 됩니다.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작가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영감과 기억을 통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작품에서 감지되는 공허감과 불안감은 욕망 자체와 전이(가장)된 욕망, 의식적 주체와 무의식적 주체로 분열되고 중첩된 주체의 이중성을, 그리고 그로부터 유래한 긴장감과 존재의 불안정성을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존재의 불안정성은 작가의 경계를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인 초상으로까지 확장됩니다.이러한 확장은 마치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하게 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을 줄 모르는 어떤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는 기억들을 찾게 하고요. 제 작업은 환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풍경, 인물, 나무, 동물 그리고 일상을 즐기는 장면들을 재구성하고 자유로운 회화적 재질감과 터치를 통해 모호한 해석들로 경계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림 속 배치된 생략된 인물, 동물 역시 상징성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어요.제 작품의 이러한 특성은 <변형된 욕망 - 초원에서 만난 토끼와 대화하기(2014)>에 잘 드러나 있는데, 초원 한가운데 있는 두 대상의 만남을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합니다.이 교감하는 전이의 감각은 자연과 인간의 구별된 단절을 극복하고 동시에 정신적으로 여행한다는 개념으로서, 제 작품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감지되는 특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