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국립미술대학
회화
학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불교예술문화학과
문화재
석사
<알라야>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것’,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는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그저 불교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라.’
모든 걸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수학 문제 풀 듯, 곰곰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
그것이 불교의 수행입니다.
참으로 품위 있고 우아한 사유 방식입니다.
부처의 위대한 통찰 중 <십이연기(十二緣起)>는 특히 경이롭습니다.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지분인 <행(行)>과 <식(識)>에서 자꾸만 멈칫거립니다.
불교에서는 인연 법칙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 말, 행동이 반드시 과보(果報)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업(Karma)이라 합니다.
욕심, 분노, 어리석음이 마음에 연기처럼 스며들어 굳어지면, 업의 씨앗이 생기게 됩니다.
필름에 상들이 새겨져 보존되듯, 아뢰야식에서 이러한 업 종자를 저장한다고 합니다.
이는 부처의 가르침을 모티브로 삼아 후대에 생성된 불교사상의 한 조각입니다.
아뢰야식은 산스크리트어로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입니다.
알라야(ālaya)를 음차(音借)한 것이 아뢰야입니다.
비즈냐나(vijñāna)를 뜻풀이 번역한 것은 식(識)입니다.
알라야(ālaya)는 ‘쌓는다, 저장소, 주거, 창고’라는 뜻입니다.
히말라야(Himā-laya)도 Himá(눈)와 ālaya(쌓이다)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눈이 쌓이는 곳. 눈의 창고.
불교 유식학에서 아뢰야식(알라야식)은 깊은 마음이라 합니다.
또는 쌓는 마음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나의 모든 행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오늘도 수백 가지 업이 쌓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적절한 때가 오면 씨앗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시절인연의 구름에 밀려온 과보(果報)가 나의 삶 어딘가에 쯤 도착하겠지요.
화가는 텅 빈 평면을 채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머릿속 하염없이 떠도는 이러한 상들을 그립니다.
제목을 읊어 봅니다.
알라야. 알라야. 알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