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디자인조형학과 조형문화예술전공
석사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조형예술학과
학사
동그랗고 단단했던 약은 가루가 되고 물이 되어 컵에 담긴다. 희뿌연하고 끈끈한 액체는 줄을 타고 내려와 잠시 멈추었다가 다른 줄과 다시 연결되어 흐른다. 각각의 속도를 가진 채 여행하는 이동들은 희미해지는 것과 진해지는 것, 가득찬 것과 비어있는 것,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 등의 사이를 견주며 변하고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을 가진 작용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 사적인 범위를 넘어서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일종의 동기임을 가늠하게 한다.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점점 행동을 취하고나서 후에 이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되는 경우가 많아짐을 느낍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회화를,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도 그 당시에 알게 되기보다 먼저 어떤 행동이 있고나서야 후에 하나씩 알아채가는 것 같습니다. 특정 행위를 행하기 전에 행위의 이유에 대해 모호하던 것들이 시간이 흐른 후 어렴풋이 인지되어감을 경험했기에 그래서 저에게는 아직도 돌아보지 못한 무수한 행동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시작점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현재와 다음만을 기약하며 흐르는 시간을 제 자신에게서 발견함과 동시에 회화의 화면 위에서도 마주합니다. 매번 시작을 잊었음과 동시에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결국 회화를 시작하고 지속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매번 다르게 구축되는 움직임과 힘을 감지하는 시간에 대한 일입니다. 이전과 지금을 비교하고 저항하며 생겨나는 힘은 시작점이 희미해짐에 따라 계속 다음만을 향해 기울어지고, 지금을 계속 확인하려는 욕심은 무너짐을 유발합니다. 그렇게 눈길을 준 모든 것들은 기울어지고 무너진 채로 감지됩니다. 저는 이 동기에 주목한 채 회화의 표면을 바라봅니다. 빈도, 시기에 따라 다른 기울기를 지니는 힘을 한 번에 제공되는 세계의 두께들과 달리 느리게 보고자하는데요. 지금 어디에 서있느냐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움직이느냐에 달려있음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시하고자 합니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했으면서도 일단은 ‘몰라’하고 대답을 유보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의 무관심해보이는 그 대답이 지금, 여기에 대한 판단을 지연 및 보류시키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회화의 촉각적인 지점이 이러한 태도를 ‘비로소’ 실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와 입에서만 붕 맴돌던 생각이 소리와 글이라는 몸을 얻어 실체를 갖게 되듯이 회화의 화면 위에서 손과 몸이 인식하게 되는 흐름은 촉각적 인식이라는 한 단계를 더 거치게 되면서 느려집니다. 그래서 화면 위의 물감을 비롯한 재료들이 마름보단 젖음의 상태에서 최대한 머물기를 선호하고 유사한 행위를 동일한 표면위에 반복해서 시도하는 작업이 많습니다. 하지만 유사한 단계가 다시 돌아올 때 마다 그 순간 행하는 동작에 최대한 집중하려합니다. 화면에서의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끈적한 물감과 유사한 동작의 반복, 또 단계마다 덮이는 껍질 같은 표면 등은 지금은 볼 수 없고 나중에야 볼 수 있는 현재의 모양이 되고자 하는 시도를 조력합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행해질수록 앞을 내다보는 동시에 이전의 행동과 흔적들을 계속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Q. 가장 애착이 가거나 특별한 작품이 있으신가요?
아직 작품이 많지 않아서 모두가 소중하지만 2016년에 진행했던 <숨잡기> 시리즈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했고 또 계속 진행중인 작업들의 대부분이 이 시리즈에서 단초를 얻게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숨잡기> 는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숨쉬기를 인지하며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을 반복해 긋는 등 신체적 행위들이 개입됨으로써 비로소 활성화 되는 화면이 만들어지는 연작입니다. 이로인해 단순히 이미지의 형상을 그려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종료되던 기존의 회화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그려내는 ‘방법’ 과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 보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숨잡기> 작업은 풍경 사진 이미지를 두텁게 그린 다음 물감이 마르기 전에 날카로운 것으로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호흡을 참으며 선을 그었습니다. 놀이하듯이 하루하루의 화면을 숨쉬기로 채웠습니다. 3호 크기의 화면부터 150호 크기의 화면을 진행했었는데 신장이 그다지 크지 않은 저는 본인의 체격을 뛰어 넘는 크기의 화면에 숨을 참으며 선을 그었을 때 저릿하면서 홀가분하고 흡족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이미지가 그려진 화면이 손상되고 무너지는 모양은 쾌감을 느끼게 해줬고 후에 화면에서 생기는 이러한 움직임들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숨을 참으며 그은 선긋기는 이후에 붓으로 획을 그어 이미지를 지우거나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등의 방식으로 변주 및 확장되었습니다.
Q.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지금까지 한 연작들의 시작점을 생각해보면 어느 한 부분에서라기보다 여러 꼭지들이 맞물리면서 작업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작업에 앞서서 물감을 비롯한 재료들을 바르고 긁어 벗겨내거나, 벗겨진 종이를 접고 구겨보는 등 주로 손에 잡힌 것을 조그맣게 건드려보는 실험 과정을 꼭 거치는데요. 이 부분이 향후 작업의 방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 실험들 이후에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움직임에서 방법을 생각해보기도 하고(<눈>, <굳은살> 연작), 이전 작업에서 발견한 작용을 다른 방향으로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래의 것들이 다른 무언가로 점점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신기하고 또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중 <굳은살> 연작의 경우 가족의 얼굴에 난 상처를 없애기 위해 매일 밴드를 붙였지만, 밴드를 떼어낼 때 품었던 기대가 무안하게도 없어진 자리에 어김없이 다시 자라나는 상처를 보고 무력감과 회의감을 느꼈던 경험과 맞물려 있습니다. <굳은살>의 표면은 그럼에도 계속 붙이는 행위를 그만둘 수 없었던 제 모습과 그동안 붙였던 수많은 밴드 부스러기들, 그리고 여전한 상처 흔적들간의 관계같기도 합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보는 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냐는 것은 곧 제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과 동일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때 오랫동안 읽히지 않던 시가 갑자기 읽혔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던 적이 있는데요. 명확한 이유없이 그저 다시 펼쳐진 책과 그 책을 다시 읽고자 한 제 모습이 전부였습니다. 그렇듯 제가 취하는 행동들을 통해서 새로운 지점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과 섬세함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천되고 감각되는 모든 것들에 솔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한 태도가 보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작품 활동 외에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대학생 시절에 수업을 들었던 한 작가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취미가 뭐죠하며 작업을 하지않을 때는 쉬는거고 작업이 곧 취미임을 언급하는 말이 그 당시에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그 쯤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 있어서 작업 이외에 과연 어떤 취미를 가져야하는 것인가 나름대로 고민을 하던 와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저 인터뷰를 보게 됐는데요. 저에게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던 경험이었습니다. 굳이 무언가를 더해야할 필요도 없고 분리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한편 저는 이번해 봄 부터 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취미라기 보다 말그대로 작업 외 시간보내기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사실 처음에는 부드러움과 섬세함 같이 꽃 자체를 다루면서 터득되는 추상적인 감각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꽃을 다루면서 실제로 체득하는 것은 제가 가진 힘이나 저의 속도처럼 다소 물리적인 감각들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손에 약한 힘을 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큰 힘이 주어지고 있어서 줄기가 부러짐을 경험하고, 잎, 줄기 등 특정 부분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 더 느리게 혹은 더 빠르게 만져주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들을 불현듯 느낍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나면 작업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잠시 매만지고 있는 재료만 바뀌었을 뿐 손에 무언가를 쥐고 감각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유사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