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경기 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 졸업 07년 경기 대학교 조형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서양화전공 석사
김윤희의 공작 이야기
삶은 살아내기 위한 열정이다. 나의 열정은 화려한 공작의 날개로 새로 태어난다. 나는 아들을 선호하던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의 맏딸로 태어나, 남들과 조금은 다른 듯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6살 때의 교통사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워지지 않은 상흔이 되어 여전히 아물지 않는 아픔이며, 꾹꾹 눌러진 슬픔이다. 그래도 삶이 아름다운 건, 울퉁불퉁할지라도 알콩달콩한 가정이 있고, 또한 나를 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은 나의 일부로서 언제나 미래에는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가를 부르게 한다. 그러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희귀병 진단으로 건강했던 날들을 문득 돌아보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 속에 필연적인 죽음을 마주한 ‘나’를 본다. 이런 삶 안에 화가로 살아가면서, 우연한 공작과의 눈맞춤은 나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된다.
나의 그림은 캔버스(canvas)의 밑 작업부터 시작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캔버스에 작고, 큰 모래알을 붙인다. 검은색 물감을 그림 위에 붓는다. 캔버스 위의 마띠에르(Matiere)는 더 도드라진다. 무작위로 색색의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에나멜페인트(enamel paint)로 날카로운 흘림선(action painting)을 만들기도 한다. 가득 채워진 검은색 굴곡들과 색의 얼룩들은 내가 이겨내야 하는 인생의 고난이다. 이러한 인생의 굴곡들을 나이프, 로울러, 붓질 등으로 그림을 만들어 간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행한 과거의 기억 들을 이겨내고, 현실의 생존을 위해 공작의 화려함을 선택한다. 공작을 그리면서, 어려운 삶의 순간들을 화려한 공작으로 승화시키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활짝 핀 공작의 꼬리를 보면 화려함의 이면 뒤에 힘든 삶의 모습도 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큰 몸체, 화려한 색 이러한 공작의 외형은 포식자에게 잘 드러나고, 긴 꼬리는 도망갈 때 장애가 된다. 불리한 형질의 핸디캡인 그 찬란함은 포식자의 눈을 사로잡고, 긴 꼬리는 도망갈 때 장애가 될지라도 종의 생존을 위한 수컷 공작새가 암컷에게 보내는 신호는 더욱 강렬하고, 애절하다.
화려한 공작의 완성을 위해 작은 깃털 하나하나씩 채워지고, 작품의 중간중간 화려함의 극치를 위해 ‘스와로브스키(Swarovski)’ 보석들을 담아 준다. 나의 공작은 더 영롱하고 찬란한 날개로 거듭난다. 오늘도 ‘종의 생존’을 위해 더 빛나고 긴 꼬리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공작은 이제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긴 꼬리털을 활짝 펼쳐서 아직도 꽁꽁 숨은 나에게, 당신에게 구애(求愛)한다. 치열한 삶을 사는 당신은 열정적이고, 당신의 삶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귀하에 대한 나의 연민(憐愍)은 죽음보다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