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 석사
나는 연필만으로 작업을 한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형식이 곧 예술적 성취가 되곤 하는 현대 미술의 경향을 생각할 때 이것은 다소 무모하고 위험한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돌아간 최소사양의 예술을 시도해보려 했다. 드로잉은 가장 원초적인 예술의 하나이지만 그 간결함은 근본적인 개념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군다나 흑연이라는 재료는 드로잉을 위한 하나의 매체이면서 또한 하나의 순수한 물질이라는 내밀한 아우라를 풍긴다. 내 작업의 방법론은 이러한 특성들을 어떻게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흑연이라는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석조의 조각이나 부조 작품과 비교될 수도 있겠지만, 내 그림 속의 흑연은 단지 대상을 재현하기 위한 하나의 미술재료에만 그치지 않는다. 나는 어떤 하나의 개념적인 혹은 상징적인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내 그림에서 흑연은 이 물질을 대신한다. 이 물질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힘이며 또한 어떤 근원적인 에너지의 덩어리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뭐라고 한마디로 규정짓기 힘든 바로 그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져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곧 ‘존재의 일의성’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