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cole supérieure d'Art de Grenoble 서양화 학사
삶을 시각적 형태로 표현하면, 이것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띄게 된다. 삶의 개념적인 혹은 사전적인 정의를 표현하게 되면, 삶의 전체적인 느낌과 감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전체로 뭉뚱그려 표현하기엔 그 내부에 담긴 디테일들이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렇다고 디테일의 표현에 집중한다면, 전체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치 나무와 숲과 같은 느낌이다. 나무만을 표현하면 숲을 보여줄 수 없고, 숲 만을 표현하면 나무를 보여줄 수 없다.
작업을 통해, 나는 삶을 완전히 다른 두가지 테마로 나누어 내가 생각하는 삶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두 테마 《Landscape & portrait》 은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디테일을 서로 분리해 접근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구성과 느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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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Landscape》에서 보편적인 삶의 형태는 사건과 시간으로 구성된다. 화면에는 원근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풍경위에, 오브제들이 배치 되어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단순한 풍경이고 사건은 우리가 그 풍경을 특별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오브제이다.
살아가는 동안의 모든 시간을 전부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어떠한 특별한 사건(Event)을 기준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아침식사의 메뉴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달이 지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나눈 대화와 그때의 시간과 공간, 분위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즉, 시간으로 인식하는 보편적인 흐름은 그것이 흘러갈수록 흐릿해지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사건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래도록 선명하게 지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건을 이정표로서 그 순간을 정의한다. 그리고 삶이란, 그러한 사건들의 퇴적작용이다.
《Landscape》는 그러한 퇴적작용이 만든 시간적 원근감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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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는 삶을 원거리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창조된 세계이기 때문에 현대인이 직접 느끼는 삶의 형태와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테마《Portrait》는 더 개인적이고, 밀접한 거리에서 관찰한, 현대인의 삶; 현대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가에 대한 에세이다. 테마 《Portrait》에서는 표현의 방식이나 이미지적 통일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개별 작품들은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가지지만,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한가지 단어는 ‘가짜’다.
‘가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가짜’는 현대인의 자아의 다중적 존재와 그것을 표현하는 가면적인 역할로써 기능한다.
인터넷 익명성의 보장과 자유, 댓글, 조금 더 넓게 보면 메타버스, 부캐 문화 또한 가짜의 개념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이런 형태의 삶이 점점 보편화 되고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가짜’는 익명의 자유로써 존재하며, 타락하고 동시에 진화하기 때문이다.
《Portrait》은 이런 현대 사회의 흐름에 대해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Portrait》를 통해 나는 내가 느낀 현대인의 삶; 현대인을 구성하는 자아의 다중적 존재와 그것에 의해 발전하는 가짜의 기능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