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미술교육
석사
홍익대학교
회화
석사
저는 명상과 독서를 좋아합니다. 두 활동은 외형상 무척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일상적인 나와 거리두기입니다. 명상은 나를 돌아보는 활동입니다. 그 활동을 통해 내가 비워집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명상입니다. 독서는 나 아닌 것들과 나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내가 채워집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독서입니다. 이 둘은 방향이 다르지만 사실 같은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새로운 것들로 나를 채우기, 그리고 다시 비우고 또 채우고…….
그렇게 ‘비우고 채우고’를 하다보면 내가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이 옵니다. 나의 경계선과 세상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나이면서 나 아닌 것, 내가 아니면서 나인 것들이 함께 어떤 이미지를 만듭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 동물과 식물, 사물들, 심지어는 바람과 소리조차 온통 하나가 되어 역동적인 이미지들이 만들어집니다. 명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무아지경(無我之境), 물아일체(物我一體),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제 작업은 이러한 과정에서 포착된 이미지들, 혹은 생명력들을 화폭에 옮기는 것입니다. 양감과 질감, 동작과 속도, 변화와 생성, 경계와 비경계가 제 작품에는 혼재되고 공존합니다. ‘나-존재들’과 ‘존재-있음과 존재-없음’이 ‘경계-있음과 경계-없음’으로 드러나고 ‘형상-있음과 형상-없음’으로 표현되려면 필히 ‘구상-추상’을 포함하면서도 넘어서는 포월(抱越)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내가 우주를 안고 넘어가거나, 우주가 나를 안고 넘어가는 모습이 포월(抱越)입니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동양철학에서 기(氣)철학과 유사하고, 노장사상(老莊思想)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길이면서 길이 아니고, 이름이면서 이름 아니고, 형상이면서 형상 아닌, 차라리 장자의 표현에 나오는 타자를 환대하는 ‘혼돈(混沌)’이거나, 펠릭스 가타리의 ‘카오스모제(chaosmose)’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오스모제’는 카오스(chaos)와 코스모스(cosmos)의 상호 침투(osmose)를 합성한 말입니다.
‘나와 너’, ‘문명과 자연’을 가르는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를 동양의 우주적 일원론, 혹은 조화적 음양론으로, 역동적 생명론으로, 생태적 지혜로 표현하고픈 욕망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색채적으로 우주적 상징인 오방색을 주로 쓰는 이유도, 모든 막힌 것들과 소통(疏通)하고픈 저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생명소통(Spiritual hamony)라는 제목이 제 작품명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주와 더불어 자유입니다. 우리는 우주와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