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동 대학원
광고홍보학
박사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
석사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학사
늦은 밤에 홀로 붓을 들고 캔버스와 마주할 때, 내가 과연 예술가로서 자질을 타고 났는가를 물어보게 된다. 육신은 고단하고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잠시 붓질을 멈추곤 한다. 내 마음 속에 들어앉은 바람과 빛과 산과 나무 그리고 꽃들을 불러내면서 없는 재능을 고통스럽게 쥐어짜고 있지나 않을까 저어할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좋은 그림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고 잊었던 설렘을 불러내게 한다. 작업을 펼쳐가는 동안 이 일이 나를 만족시킬 것이란 기대를 걸지 않는다. 창작은 언제나 만족보다 결핍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그림 그리기는 검술을 연마하는 강호의 고수처럼 고독하고 힘겹고 허기와 맞서는 투쟁이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모르긴 해도 살아있는 한 지속되리라 믿고 있다. 그림 그리기는 내 삶의 실체를 확인하는 활동이다. 내 작업의 목적은 이겨내고 살아남아 행복한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믿는다. 한두 번의 붓질로 훌륭한 그림이 탄생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림은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몸이 만들어낸다. 간절한 존재의 의미들을 몸이 기억해서 표현하도록 길들인다. 그래서 원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화폭에 수천 번의 붓질을 더하는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수만 번 겹겹이 쌓아올리는 색깔들이 먼저 쌓아놓은 것들을 덮고 또 엎어야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화려한 기술로 치장하고, 어려운 이미지에 고상한 의미를 부여하는 짓을 나는 사양한다. 내 몸과 정신을 버무린 이 그림들이 부디 그대의 목마름을 약간이라도 축일 수 있기를.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오래 묵은 일입니다. 경상남도 창녕 낙동강 배후습지 우포늪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필연적으로 자연 속에서 자랐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미술대회에 참가하곤 하다가 읍내 중학교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물감과 본격적으로 친밀해졌습니다.
여고 국어 선생님이 되리라는 꿈을 접고 홍대 미대에 진학했습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직업을 교수로 바꾸고 나서 틈나는 대로 그림 작업을 하다가 박사 논문을 쓰면서 작가 활동의 결심이 깊어졌습니다. 논문이나 집필보다 그림이 세상과 내가 마주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날 새벽에 깊이 몰려들었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존재란 무엇인가?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특히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과 그것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입니다. 나와 너, 우리 인간이 갖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여러 소재와 기법으로 보여주려 합니다. 따라서 바람과 햇빛으로 드러나는 우리 행성의 존재, 그리고 동물과 식물에 기대어 생명 작용에 천착합니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덧칠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색채가 주는 직관적 느낌에 집중합니다.
논문과 집필을 통해 오랜 기간 색채를 연구해왔습니다. 눈으로 받아들이는 느낌과 인간의 정서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이것을 캔버스에 적용해왔습니다. 제 작업은 수천 가지 색깔을 포개 올렸을 때 나타나는 병치 효과를 구현하는 결과물입니다. 추상과 구상을 섞어 존재의 관계들을 녹여내기도 합니다.
Q. 가장 애착이 가거나 특별한 작품이 있으신가요?
몇 년 전에 길고양이 두 마리를 식구로 받아들이면서 생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으로 돌아가기’라고 할까요? 어릴 적 시골 생활에서 함께 했던 그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관심 영역에 더 깊게 자리했습니다. 제 작업에 모델이 되어주는 고양이가 생명을 가진 존재에 대한 질문자 역할을 합니다.
Q.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지금까지 독서와 공부, 연구와 생활이 영감의 기반입니다.
우포늪 인근에서 성장했던 기억들도 더없이 소중한 영감입니다. 또한 여행지에서 만났던 풍경과 소소한 것들을 사진으로, 스케치로 혹은 머릿속에 기록해서 자료로 삼고 있습니다. ‘즐겁거나 괴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가’와 같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좋은 영감이 되곤 합니다. 음악, 강연, 영화, 운동 등 접하는 모든 상황을 그림 작업과 연결시키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앞으로 작업 방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까지 작업해온 표현방식을 유지하면서 다양하게 변주해 나갈 예정입니다. 현대미술이 갖는 난해함은 접어두고 색채와 소재, 의미를 버무려내는 완성형 작업물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치밀한 묘사와 깊고 넓은 질문을 던지는 작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기분 좋은 그림, 아름답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림, 작가의 삶과 정신이 일치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장자에게는 같이 밥 먹고 대화하고 싶은 작가, 친구가 되고 싶은 작가......
Q. 작품 활동 외에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유튜브 채널에서 자연과학 관련 강연 듣기, 고양이와 놀기, 가끔 친구와 스크린골프 즐기기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Q. 작품 활동 외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3권의 책을 낸 이후로 한동안 책 쓰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림이 들어간 예쁜 책 혹은 제 사상이 녹아나는 인문사회 분야 책을 낼 계획도 있습니다.
제 그림을 사랑하는 친구를 여럿 갖는 것도 소중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