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
관계와 감정
우리는 관계 속에 살아간다.
關係 / Relation
관계는 복수의 대상이 서로 관련하여 이루는 특성이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관계들이 있다. 특히 우리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산다. 게다가 가속화되어 발전하는 현대의 과학기술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관계형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가상공간을 통해 그 환경은 나날이 더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보다 더욱더 복잡하고도 다양한 관계가 존재하게 되었다.
오늘도 SNS에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안부를 듣고 그 친구의 일상을 본다. 현대는 시공간의 한계가 허물어졌고 실제와 가상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는듯하다.
이렇게 현대의 다변화된 인간의 관계에 감정은 어떤 일의 흐름에 끼어드는 변수가 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양한 상호작용을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마음의 감정이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결과로 향해가는 도중 작용하여 결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 감정이라는 것은 같은 상황이라도 각자의 개성이나 특성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에따라 각자가 받아들이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복잡해진다. 그래서 단순한 일이더라도 인간의 감정이 개입하게 되면 단순하지 않게 된다.
공작과 관계의 이미지
비행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공작을 모티브로 10여년 작업을 해왔다.
공작은 이상을 쫒아 꿈을 꾸며 현실의 불편함을 감내하는 내 삶의 페르소나다.
생태학적으로는 불합리하지만 진화론적으로는 필요한 공작의 긴 꼬리깃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가 붙여줬다는 아르고스의 백개의 눈이 있다.
이오를 감시하던 아르고스의 눈은 공작깃에 달릴때에는 쓸모가 없어진 후였다. 그럼에도 감시하던 눈의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인지 공작의 꼬리깃 눈모양에서 관계에 대한 대입이 가능하다. 규칙적인 듯한 펼침무늬에서는 서로의 관계들이 보이는 듯하다. 가까운 관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외면하기 힘든 여러 관계들은 점점 더 개인주의로 변해가고 있는 현대에도 아직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관계속에서 나의 감정이 길을 잃지 않고 내면의 빛을 유지하고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아와 자존이 근본일 것이다.
헤라의 아르고스 눈들이 고유한 자아를 가지고 내면의 빛을 품고 뿜어져 나온다면..
이 대목에서 나는 발산의 이미지로 가장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운 물체로 단번에 꽃을 떠올렸다.
피어나는 것은 뿜어져 나오는 빛과 같이 생명과 희망, 그리고 확장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다.
공작의 펼친 꼬리깃은 태양의 번져나가는 불빛 같기도 하고 별이 떠오르는 밤하늘 같기도 하다. 그것은 에너지의 응축이 바깥으로 발산해 확장하는 형상이다.
자존를 통해 꾸는 꿈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라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상선약수’는 도가 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기인한다. 무위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도가에서 이상적인 경지로 본 물은 겸허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만물을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물이 흐르듯 밀도가 높은 선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물과 같이 그리고 빛과 같이 선이라는 것이 우리의 관계 안에서 흐르고 착한 것을 보듯 꽃을 보듯 서로를 바라봐주기를 바랬다. 밀도가 높은 선, 자아, 자존이 자연스레 밀도가 낮은 곳으로 흘러 넘치 듯 펼쳐가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 안에 공작깃의 눈에는 꽃이 담겼다. 각각의 꽃에는 마음을 담는다. 어떤 이의 감정이 소중히 담겨 선에 닿은 마음의 발산을 담고자 했다.
그러면 관계는 서로의 고유한 마음을 잘 읽어주고 보아주는 사이에 마음을 담은 꽃(맴꽃)의 평화로운 이상이 된다.
각자를 꽃에 담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것은 우리 서로가 서로를 꽃으로 보아주는 관계와 맞닿아 있다. 거기에서 각자가 뿜어내는 마음의 향기는 선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우리 서로가 꽃이라면 우리의 관계는 가장 착함, 선에 머무르는 상태인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작품은 우리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고유의 선을 키워나가고 그 선의 흐름을 함께 이상하는 것의 청유다.
작품을 통해 꾸는 꿈은 아무래도 현실에서 발을 돋은 이상이다. 공작으로 이상을 꿈꾸는 일은 꽃을 담고 마음을 담는 것에서 시작한다.
꽃 담 맴 담으로 맴꽃다발을 엮는 것.
여기부터 시작이다.
2023. 8. 황정경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