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미술대학 서양화 미술대학 수석 졸업
작가는 평면사이의 공간을 연출하여 평면작품이면서 입체작품인 듯한 이중감각을 갖게 한다. 구상적인 앞부분과 추상적인 뒷부분 사이에 여백을 둔 삼중적 구성, 전후의 평면을 약간 어긋나게 배열하여 평면성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다층평면으로 구성된 작품의 입체성은 시간차를 두고 행해진 시간여행에 얽혀 있는 다면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하여 시간이 중층으로 켜켜이 쌓이게 되어 삶의 깊은 맛을 더해준다. 이러한 구도 속에 작가 자신의 시각으로 그림 전체를 응시하는 모습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제시하여 작가적 개입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대상이나 방관자로만 머무르지 않은 주체적인 개입은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로 여겨진다. 서정희의 작품세계는 시간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을 되살려 재음미하고, 우리로 하여금 신비롭고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미술과비평평론 김 광 명(숭실대 명예교수, 예술철학)
서정희‘시간여행자 이야기’
작가노트 중에서
다중평면 작업을 한다. 많은 세월 속을 스쳐 지나간 모든 마음들과 생명들이 시간들 속에 쌓이듯 내 작업도 겹겹이 쌓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그림 속에서 또 다른 미지의 공간들 틈 속으로 눈을 감고 조용히 걸어본다. 낮은 음률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빛이 흐르고 색감들이 흐른다. 그리고 이윽고 잠들었던 사물들이 깨어나 시간여행자와 함께 고요히 흐른다.
긴 그림자들이 비스듬한 오후 빛을 가녀린 호흡으로 토해내고 나면 비로소 또 다른 공간속에 숨은 시간들도 석양빛을 등지고 하나둘 손을 내밀어 시간여행자와 마주한다. 오래된 떠도는 나의 소중한 잃어버린 시간들, 공간들의 파편들로 모여진 기억들과의 긴 대화가 시작된다. 제일 먼저 잊을 수 없는 어느 해 가을이 단조음률을 타고 내게 말을 건넨다.
내 그림 속 낡은 티 테이블엔 거의 항상 파스텔톤 구름들이 만들어 준 천상의 향기를 품은 찻잔이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손을 내민다. 그들과의 만남은 항상 정겹고 즐겁다.
이곳저곳에서 반짝이는 새싹들도 종알거리며 하루 동안 숲속 얘기를 내게 전한다. 그림속에서의 모든 만남들이 신비스럽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