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동양화 석사
스쳐 지나간 것에도 뒷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 또한 추억이다. 지나간 시선과 기억은 찰나고 인연이 된다. 내 작업은 그동안 스쳐 지나가며 본 시선들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 어떠한 장면을 마주했을 때, 어디선가 경험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억은 선명하게 나진 않지만 마치 과거의 어떠한 상황에 나도 함께 존재했었던 것처럼 익숙함과 흐릿함을 느낀다. 오래되고 초점이 맞지 않는 흑백사진을 보는 것과 같이 그림에는 여러 겹의 연필 선을 쌓으며 윤곽선과 세부 묘사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은 선명하지 않아서 우리가 추억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게 되며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그림의 시작점이 된다. 나의 시선을 통해 나의 회상, 그리고 보는 이들도 각자만의 해석을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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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순간’들은 모두 ‘과거’라는 곳으로 보관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나의 작업 속에서 잊혀지기도 하고 극복되기도 하고 잘 보관되기도 한다.
나의 작업은 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일기장 속 장면들을 꺼내볼 수 있는 기록의 의미가 담겨있다. 기록을 통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장면을 회상하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나 혹은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리운 것이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나의 시선과 기록을 통해 관람자들의 잊고 있었던 각자의 때를 회상하며 일상에서 작은 위로를 얻길 바란다.
@longshu.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