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
최금숙 작가노트
현대인들은 문명적, 사회적, 환경적인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한두 가지씩 정신 이상증을 안고 살아간다. 그 정도가 심해서 외부에 발현되기도 하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면 깊숙이 동면하기도 하며, 인간의 무의식 안에 잠재되어 있기도 한다. 그것이 때로는 집착으로 때로는 강박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눈부신 문명의 발달로 인한 기계화와 디지털 세상에 이어서, AI가 선도하는 현 시점까지, 인간의 능력은 크게 한 몫 하였지만, 그에 대한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란 때론 위대하고 강하지만, 어떤 종류의 위기나 천재지변 앞에서는 한순간에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 순간, 신이든 인간이든 사물들에게 애착하고 의존해야만 견딜 수 있다.
작가에게도 어린 시절, 가끔 회상되는 경험들이 있다. 특히 48색의 크레파스와 값비싼 학용품과 예쁘고 좋은 옷 등을 소유했던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그것을 가질 수 없음에 대한 헛된 욕망과 아픔,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 유치했던 시절, 어찌하여 그런 외형적인 면만을 보았던 것일까? 그런 것만 눈에 띄었던 그 시절의 가난과 결핍이 한으로 맺혀있다. 그로 인해 집착과 강박이 작가의 작업배경 속에 녹아들었고, ‘강박적 일상의 패턴’이라는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반복, 수집, 축적, 집착, 강박, 패턴, 일상이라는 키워드로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그것을 사유하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수행적인 치유와 위안을 보상받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같은 경험이 있는 관람자까지도 전달되기를 바란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집착(執着)이란 영어로 Obsession으로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린다는 뜻이다. 또한 강박(强迫)이란 영어로 Compulsion이며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낀다는 뜻이다. 집착과 강박의 개념은 비슷하지만 마음의 상태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작가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가난과 결핍은 집착을 넘어 강박으로 작품에 반영되었다. 1960에서 1970년, 그 시절은 사회적,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때의 가난과 결핍의 문제는 앞으로 작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범사회적인 대안으로 확장해 볼 계획이다.
작품의 형식적인 면을 살펴보면, 실내 장식적이고 디자인적인 일상 속의 배경에서 소녀와 소년의 뒷모습이 과거의 본인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애착하고 갖고 싶었던 일상의 오브제들이 숨 막힐 정도로 빼곡히 들여 차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집착과 강박의 성향을 수집성, 축적성, 반복성 패턴으로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선보다는 면으로 강조하려 했고, 면의 분할과 비율을 채도 변화와 붓 터치로 표현하려 의도했다. 채색적인 점에서도 초반 작업에는 마티스의 강렬한 원색과 이미지들을 선호했지만 중, 후반부터는 연하면서도 경계가 모호한 분위기와 공간을 파스텔 톤으로 처리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해맑음과 중용적 품성에서 기인 한다. 기법은 미디엄 작업과 레이어 쌓기, 지우고 닦아내기, 뿌리고 흘리기, 그라데이션과 블러 기법 등을 차용하고 실험했다. 원근법과 명암은 반전효과를 기대하면서 있는 듯 표현하고, 없는 듯 배제하려고 했다. 이번 작업에서의 이미지는 직접 촬영한 사진이나 인터넷의 앱에서 참고하였으며, 주변의 오브제를 수집하고 중첩하여 포토샵으로 편집하고 디자인 작업하였다.
2023. 6. 29. 최금숙
최금숙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을 축하하며
이근범(작가, 교수, 홍익대 미술학 박사)
그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하며 되뇌는 모습이 최근 내가 알고 있는 최금숙 작가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설레고 신나며 한편으론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일 것이다.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도 할 것이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 역시도 오랫동안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림에 무슨 정도가 있기 만무하련만, 그래도 정신적 자유와 인고의 시간을 충분히 겪어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최금숙의 그림 속에는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흔적들이 보인다. 오래된 일상의 일기장을 뒤적이면서 마음의 상처에 항생제를 바르고 있다. 그 연고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겹겹이 시간의 무게를 쌓아가면서 치유되지 않을까 기다려 본다.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필수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작가와 대화 속에서 엿보이는 과거의 흔적들이 다소 통속적이고 일반적이어도 그 무게의 측량을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살아오면서 안고 가는 수많은 개인사 중에서 유독 가슴 아픈 사연만 각인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빨래 그림’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자식들에게 헌신하지 못한 어미의 통한을 토해냈다. 나는 최금숙의 지나간 아픈 일상들이 캔버스에 승화되어 펼쳐졌음을 볼 수 있었다.
“좋은 그림, 더 인정받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남의 삶에 개입하거나 다른 작품들에 좌우되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남들에게 어설프게 보이기 두려워 가면의 모습으로 보여 지길 바랄 수도 있다. 그 결정이나 자신감은 최금숙의 몫이다. 나는 격려하고 싶어진다. 앞으로 더욱 인정받는 최금숙 작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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