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석 작가는 ‘동물 농장’ 연작에서 동물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알레고리를 연출해 낸다. 넓은 여백을 두고 화면 위에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동물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가능성의 공간으로 관객을 이끌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진 알레고리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작품 속에서 왕관을 쓴 말, 넥타이를 맨 말의 모습은 이질감을 통해 역설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이 내러티브는 명확한 하나의 의미를 제시하는 대신 관객에게 판단을 맡김으로써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성을 획득한다. 관객에 따라 이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가지는 의미, 현대인의 과도한 욕망, 권력에 의한 억압, 인간의 동물적 본성과 이성 등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작품이 가진 다의성은 오독(誤讀)을 불러올 가능성을 발생시키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묻고 대답하게 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새롭게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1947)에서 말 ‘복서’는 동물 왕국의 이상(理想)을 믿고 우직하게 일하지만 늙고 힘이 없어지자 도살장에 팔려 갑니다. 한마디로 어리석을 만큼 성실하고 집단에 헌신적이며 믿는 바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정재석 작가는 이러한 말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화면 위에 외롭게 떠올라 있는 말의 창백한 실루엣을 바라보노라면, 그 쓸쓸한 눈빛, 고단해 보이는 뒷모습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흰 배경에 흑연으로 명암만을 이용해 사실적인 묘사를 이루어낸 이 작품은 절제된 표현방식 덕분에 공간에 차분함을 주고, 여러 작품과 어우러져도 멋스러울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한 말의 눈망울에서 잠시 멈춰 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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