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 여느 국가와 달리 빠른 시간 안에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추억할 수 있는 옛 모습과 따뜻한 감성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신도시 개발로 지역의 모습이 변하고 살던 곳을 떠나가야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박용일 작가는 그들의 사연과 애환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보따리가 바로 자본의 흐름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야 했던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현실을 상징한다. 짐을 싸고 풀어야 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본의 감각 속에 무뎌진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환기하게 된다.
박용일 작가의 작품에는 보통 보따리 겉면에 오래된 주택, 가로수, 거리를 지나는 행인, 버스 등 일상적인 도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쩐지 구체적인 내용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배경에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불린 우리의 선조를 상징하는 듯한 흰 보가 꼭 묶여 있습니다.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며, 흰색이라는 요소가 내용보다 형태에 더 집중하게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서민들이 즐겨 사용했던 보따리의 모습과 속성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푸른색과의 대비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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