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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이 보이는 바닷가, 녹아내리듯 흐물흐물한 시계가 하나는 나무에 걸려 있고, 다른 하나는 상자에 걸쳐 있으며, 나머지는 죽은 말 또는 사람의 얼굴 반쪽처럼 보이는 곳에 얹혀 있다. 초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걸작 <기억의 지속>은 이런 소재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물체를 같은 공간에 그려 넣어 낯설고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을 표현하는 기법을 ‘데페이즈망’이라고 한다. 최보람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남극의 펭귄과 열대 지방의 홍학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가 하면, 이들 동물은 우리의 일상 공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배경이 되는 공간이 무난한 색채로 표현된 데 비해, 펭귄의 흑색과 백색, 홍학의 강렬한 붉은색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 동물이 창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엿보고 있는 구경꾼인 것만 같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창문은 이들과 우리를 갈라놓는 오브제여야 한다. 그러나 창문은 이들과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게 해 주는 기능 또한 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들을 낯선 땅에 사는 제3자로 보지 않고, 우리와 똑같이 외로워하고,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원하는 존재로 그리는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다.
“상상력은 현실과의 전쟁에서 쓸 수 있는 무기다.” 프랑스의 철학자 쥘 드 고티에의 말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현실의 이론이나 잣대로만 해결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오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터전을 차츰 빼앗기고 있는 펭귄과 홍학. 작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 동물을 우리와 이어 주는 ‘4차원의 통로’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현실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한 것 같네요. 동물들은 우리를, 우리는 동물들을 서로 쳐다봅니다. 눈길을 마주치는 것은 교감의 첫걸음이지요. 안도현 시인의 시집 제목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삶은 외롭고, 높고, 쓸쓸합니다. 첨단 기술이 우리 삶을 아무리 편리하게 해 주어도 결국 삶은 홀로 서는 과정이니까요. 그 고단함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다면 펭귄과 홍학도, 그리고 우리도 그 짐의 무게를 덜 수 있겠지요. ‘너와 내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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