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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 작가의 작품은 공예품을 만드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모델링 페이스트가 베이스가 되고, 그 위에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만들어진 요철이 돋보인다. 수십 년간 해왔던 작업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은 작가 본연의 색조를 담아내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다. 작가는 2001년부터 독특한 방식으로 화면 베이스를 제작하여 반전 페인팅을 해왔는데, 먼저 캔버스에 특수제작된 물결 모양의 대형 곡선자로 9mm 간격의 라인을 쳐둔 후 나이프로 모델링 페이스트를 수십번 펴서 바르는 과정을 반복한다. 마른 후에 다시금 얇게 펴서 바르고 또 바른다. 표면층이 0.5mm 두께가 되고 나면 하루 동안 페이스트를 건조시킨 후 라인 테이프를 떼어낸다. 이렇게 떼어낸 부분은 음각이 되고, 다른 부분은 양각이 되어 요철을 드러내는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사포질, 다듬기, 베이스 칠로 작품의 기초를 완성한 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고 난 후에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작가는 실재하는 물체의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 즉 허공을 그려 ‘없음’으로부터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네거티브 페인팅>을 구사한다.
“나의 그리기는 나무의 잔가지 사이사이로 비추는 빛의 면적, 즉 사이 공간을 그리는 것이다.” 작가님의 말처럼, 장희진 작가님의 작업은 빈 캔버스에 이미지를 그려 넣는 회화방식이 아닌 역으로 다가간 ‘허공에 채색을 더해 이미지를 드러낸다’라는 역 페인팅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은 과정 자체가 반전입니다. 작가님은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이미지로써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형상이 아닌 것을 그림으로써 형상화하는 것을 깨달은 후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허공에 그려 넣게 됩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이 좋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슬로우 벨류의 대명사와 같은 작품은 ‘느림의 미학’을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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