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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작가의 작업은 얼핏 보면 어떤 계획도 없이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서 캔버스에 색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는다. 레이어가 쌓여서 어느정도 이미지가 형성되었을 때, 이를 레진으로 고정시키고 또 그 위에 레이어를 쌓고 고정시킨다. 수행과도 같은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이 너무 이 규칙의 반복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레진을 활용하지 않는 작업들도 있는데, 그런 작업들은 레진을 활용한 작업에 비해서 견고한 느낌이 덜하다. 하지만 레진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전반에서는 세심하고 꼼꼼한 작업 방식에서 비롯된 모종의 힘이 느껴진다. 이 힘은 특정 재료들과 색들을 특정 방식으로 조합했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특수한 이미지를 통해서 더욱 강화된다. 색과 톤, 질감 등의 측면에 있어서 섬세한 차이를 갖는 이미지들은 구체적이기 보다는, 언어로 붙잡을 수 없는 미묘한 느낌들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감상자에게 자신이 섬세하고 미묘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재현적인 회화는 감상자에게 어떤 상황에 대한 상상 및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때 갖는 감정은 작품이 그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고, 감정의 대상을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집어낼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 감정에 관한 논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추상화의 경우, 감상자가 갖는 느낌은 재현적인 회화가 불러일으키는 감정보다 훨씬 더 사적인 성향을 기반으로 한 것처럼 보입니다. 추상화가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색이 겹쳐진 모양, 표면의 질감 등 훨씬 더 미세한 측면들을 근거로 합니다. 하지만 특정 요소들을 특정 느낌과 연결짓는 규칙이나 정형화된 패턴이 없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감상자간 불일치가 빈번합니다. 또한 이 느낌의 원인이 되는 미세한 측면들을 의식적으로 포착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이 감정에 관해서는 논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추상화는 이처럼 유사한 종류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재현적인 회화와 달리, 사적인 성향에 호소해서 감상자 별로 각각 다른 느낌을 이끌어내고, 이는 감상자가 자신의 심적 역량, 섬세한 느낌들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을 의식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윤정 작가가 만들어낸 다양한 이미지들과 함께, 나의 심적 역량의 한계를 탐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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