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하의 작품 속에는 추리소설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야기의 전개가 있다. 이곳에서 관람자는 마치 게임을 하듯 묘하고 낯선 심리전을 이어간다. 사건의 배경은 까페, 강가, 시장, 술집처럼 평범한 장소이다. 하지만 이곳은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혹은 이미 어떤 사건이 지나갔음을 짐작하게 하듯 긴장감이 겉돈다. 상황을 한층 고조시키는 장치로서 인물과 이들을 둘러싼 음습한 공기, 배경이 한데 용해되는 독특한 지점이 발견된다. 이는 마치 온갖 불순물이 뒤섞인 끈덕끈덕한 액체 상태로 공간을 좀먹는 바이러스 같다. 이러한 비이성적 소용돌이는 우리로 하여금 평범한 사람들과 장소를 비틀어보게 한다. 이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삶의 틈, 그 간극 사이를 통해 불연 듯 찾아오는 사건에 집중하고 의문을 던진다.
박은하 작가의 작품은 바위, 바다, 꽃밭과 같은 자연에서부터 까페, 술집, 시장과 같은 통속적인 공간을 주무대로 합니다. 이러한 공간은 으레 사람들로 북적거리거나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지기에 마련이지요. 하지만 작가가 그린 작품 속 세상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떤 장소가 폐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이 그 공간에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기 없이 푸른 빛이 도는 낯빛입니다. 이들에게서 ‘사람다운’ 면모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작품에서 표현된 욕망의 주체들, 진실을 외면하는 듯한 냉정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심리표현은 작금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각적 주해와 같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현실비판적인 시각과 통찰력으로 관람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갑니다. 현실에 대한 생생한 반응과 대화를 유도해가는 박은하의 살아있는 회화를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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