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숲>은 시공간적 제약이 적다는 드로잉의 매체적 특성과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의식이 조화를 이룬 연작이다. ‘지금’, ‘여기’를 포착해내며 드로잉의 미감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임주리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면서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하나의 자아가 여러 방식으로 조합되는 작품의 흐름 속에서 감상자들은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분열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 스스로를 은유하는 캐릭터 줄(Jule)의 표정과 꽃은 각 작품마다 매번 변주하며 등장하는데, 이러한 디테일은 즐거움의 요소로 거듭난다. 이렇듯 동일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주인공이 자아내는 모순은 감상자들에게 있어 ‘유희적 위로’라는 또 다른 모순으로 다가올 것이다.
임주리 작가의 모노톤 드로잉에는 자연의 풍경이 흑백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에 <회색숲>이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조금은 차가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번이고 돌고 돌아 우리를 따뜻하게 껴안아줄 것만 같은 얇은 선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세밀한 선묘로 그려진 나무가 곧 인간이 되고, 그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이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이자 관계가 되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답니다. 묘하게 다른 얼굴의 캐릭터들과 지긋이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짧은 시간이나마 자연 속을 거니는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고 싶은 분들, 그리고 그림으로부터 즐거운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께 잘 어울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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