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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그대들은’,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 등 정철규 작가의 작품은 제목부터 시적이고 함축적이다. 작가의 화면은 세밀한 묘사와 함께 시 속 환상이 구체화된 결과물이지만, 활용된 색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중에서도 작업 전반에 걸쳐 특히 눈에 띄는 색은 분홍색인데, 캔버스의 작은 부분이나마 차지하여 그 빛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상징성을 읽어낼 수 있다. 분홍색은 일반적으로 나약함, 불안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작가는 본인의 주관을 기반으로 하여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포근한 내러티브를 풀어내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형상들을 병렬하여 낯선 풍경을 제시함으로써, 마음속에 갇혀 있던 시의 구절들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나뭇가지들은 이곳저곳을 향해 팔을 뻗고 있고, 얼음은 부서지지도 녹지도 않은 채 하늘을 바라봅니다. 꿈속 풍경보다 현실적이지만,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정철규 작가의 화면은 일상적인 풍경과 시적 단어의 재구성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풍경입니다. 호안 미로의 초현실주의 화풍이나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과는 또 다른 느낌의 캔버스 속 세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작품 곳곳에 옅게 깔린 분홍색은 그 존재감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나긋나긋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화면의 곳곳을 차지하는 분홍색과 제목의 연관성을 추측해보는 것도 정철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재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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