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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정 작가의 작업에서 돋보이는 것은 색을 머금고 있는 비단의 매끈한 촉감이다. 비단은 작가가 사용하는 핵심재료로 캔버스 역할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의 토대가 되는 비단을 만들기 위해, 염료를 직접 배합해서 비단에 입힐 색을 만들고 이를 비단에 입힌 후 높은 온도에서 증기로 쪄낸다. 이 과정을 거친 비단을 풀을 이용해서 한지에 배접하고 난 후에야 캔버스 준비가 완료된다. 작가는 이 완성된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는데,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이 주 소재가 된다. 작가는 이를 오행사상을 상징하는 적, 황, 청, 백, 흑의 오방색으로 칠한다. 옛날부터 십장생을 족자나 병풍에 그리는 일은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김근정 작가는 오묘한 색을 머금은 비단의 부드러운 감촉을 극대화하고, 이를 매트하게 발려있는 아크릴과 조화시켜서 색다른 느낌의 십장생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해, 달, 별, 학, 소나무 등의 소재들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다양한 생활용품들 속에 그려 넣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바람이 현재에도 이어진다는 점을 관찰하고, 전통적인 소재인 십장생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풀어냅니다. 작가의 현대적인 ‘비틀기’는 십장생을 그려 넣는 방식에서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십장생화에서는 모든 십장생의 온전한 모습을 담아내지만, 작가는 이 중 몇 개를 선택해서 묘사하며, 십장생이 가진 전형적인 색이나 묘사 방법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전통적인 십장생화에서 해는 적색, 달은 황색을 띠지만, 작가의 작업에서 해는 적색 외의 여러 가지 색으로 나타납니다. 작가의 독특함은 작가가 캔버스로 비단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비단 특유의 촉감을 살려냄으로써 자신만의 캔버스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독특하죠. 김근정 작가의 작업과 함께 전통의 현대적인 변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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