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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隱-現)>시리즈는 주로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창살 사이로 비치는 바깥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바깥에는 희미하게 대나무가 보이고, 바깥이 비치는 창살, 창의 부분을 제외한 여백의 부분이 꽤나 크게 느껴진다. 이는 남김없이 채워진 캔버스와 달리 이 그림에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시공간이 있다. 옛 문인화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그림은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않음에도 인간 본질에 대한 은유가 된다. 김봉천 작가는 밑그림을 그린 캔버스에 칼집을 내어 캔버스 자체에 결을 살리는 기법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작가가 가진 동양화풍이 주는 정적이고 적막한 분위기에 깊이와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김봉천 작가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를 공간 안으로 초대합니다. 숨김과 나타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제목 <은-현(隱-現)>처럼 그림은 창살 사이로 창밖을 숨기는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위기의 순간, 우리는 어둡고 고요한 사색의 공간을 찾곤 합니다. 그 공간에 앉아 우리는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속세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편과 저편’ 그리고 ‘나와 내가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색의 시공간은 원래 있던 바를 새로이 볼 수 있게 되는 시선을 허락해줍니다. 이러한 시선을 담은 김봉천 작가의 그림 안에서 희미하고 느리지만 분명한 진리의 현현이 일어납니다. 이 그림은 무엇을 알고 있고 모르는지, 또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공간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인생의 빛줄기를 기다릴 곳을 마련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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