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현 개인전 <겪는 순간, 그림의 결과 Experienced moments and result of painting>
동덕아트갤러리 I 서울
겪는 순간, 그림의 결과 황 지 현 개인이 삶 속에서 겪는 충돌과 감화(感化)의 경험을 회화로 표현하고 있다. 살아가며 직접 겪은 상황들과 신문, 방송, 통신을 통해 마주하는 간접적인 경험까지 그 속에서 느끼는 심리를 감각과 기억을 통해 평면에 표현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인간의 '심리학적 장'을 표현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 '심리학적 장'은 독일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 1890~1947)의 ‘장이론(Field Theory)’에서 인용한 말이다. 장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간에는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이 존재하고, 인간의 행동에는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심리학적 장과 물리적 공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동 양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또한 심리적 환경의 특성은 개인의 특성에 의해서도 결정되는데, 심리학적 요인이라고 부른 이러한 영향 요인에는 배고픔과 피곤함 같은 내적 사건, 사회적 상황과 같은 외적 사건, 그리고 이전 경험의 회상과 같은 요인들이 포함된다. 레빈은 장이론에서 개인과 환경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했다면, 나는 본인이 경험하는 상황들과 그 속의 심리적 변화, 조형적 표현 방법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의 시작은 본인이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한 순간을 카메라로 이미지를 포착하고 글로 그 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한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할 때, 당시의 기억과 기록의 흔적들을 상기시켜 화면에 표현할 색을 선정하고 형태들을 그려나간다. 순서를 나누자면 카메라를 통한 1차적 기록, 글과 드로잉을 통한 2차적 기록, 3차적으로 시간이 지나 남겨진 기억을 통해 평면에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이 과정에는 사건의 기록과 본인이 인식한 이미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감정들이 서로 혼재되어 유동적으로 영향을 준다. 작품의 소재는 본인이 생각하는 일상 속 강렬한 순간들부터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비교적 넓게 포착하였다. 하나의 틀과 경계를 두기보다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을 선택하였다. 캔버스 200x140cm 네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여기서부터 어딘가로>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습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데서 출발하였다. 중앙의 두 점으로 연결된 작품을 보면 자궁, 왕관, 바위, 풀, 사람들 같이 다양한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의 욕망, 가족, 종교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된다. 본인의 경험에서 부각되어 인식된 이미지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흘러내리고 발산하는 터치들로 화면 위에 표현한다. 미술사, 신화에서 차용한 이미지는 원본의 작품에 뿌리를 두지만, 현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또 다르게 읽히는 주관적인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주관적으로 선택한 이미지들이지만 온전히 사적이지는 않은 형상들, 이질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삶 속의 사건들을 담고 있다. 작품 <경배>는 할머니의 죽음과 장례절차를 따라가며 겪은 장면들 그리고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한 형상을 원경 중경 근경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근경의 경배하는 이들은 뒷모습으로, 중경의 노래하는 사람들은 얼굴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뒤에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눈에 띄도록 묘사하여 부재(不在)하는 대상에 더욱 초점을 두었다. 회화에서 그리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해석은 변형되고 편집된 이미지들을 통해 또 다른 의미의 가능성을 연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순간들과 그 속의 스쳐가는 생각들을 포착하고 심리적 충돌들을 섬세하게 탐구하여 표현하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본인의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미적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