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 네 겹의 기호 강홍구(사진을 주로 사용하는 일종의 미술가) 1 박용일의 보따리 그림은 우선 자신의 작업에 대한 고백이자 진술이다. 누군가의 진술 혹은 고백은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한 기승전결을 남들이 알아듣도록 말해주는 것이다. 박용일이 재개발 지역의 철거중인 건물들을 보따리에 싸기 시작한 것은 여러 해가 되었다. 그 건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모조리 사라지고 아파트로 변했다. 사라진 집과 아파트는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공간의 엇갈림 사이에 박용일의 보따리 그림이 있고, 그 안에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 진술들은 너무 많고 다양해 말로 다 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묶어 싸는 보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박용일은 그 집들의 이야기, 집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싸고 묶어 전시장으로 들고 다니며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보따리 속에 무엇이 싸여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알아서 읽어 보라고. 2. 그가 그린 것은 보따리가 아니고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릴 수 없으므로 보따리를 보여주어서 보는 사람이 상상하게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그의 작품은 제 역할을 하게 된다. 박용일의 보따리는 무늬가 있거나 없는 천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는 무언가 있다. 한 때 그것은 부서진 집이었고, 재개발 풍경이었다가 이제는 꽃이고, 고추이며, 동시에 나무 풍경이며, 추상적인 기호들로 확장 되었다. 하지만 정말 흥미 있는 것은 보따리 겉에 그려진, 혹은 새겨진 무늬가 아니다. 그 무늬들, 그림들, 기호들은 단지 하나의 힌트에 지나지 않는다. 박용일이 자신의 보따리 그림을 보는 이들과 벌이는 게임은 복잡하다. 일차적으로는 단순한 보따리라는 기호를 보여준다. 그 기호는 보따리라는 것, 보따리에 그려진 무늬들이 내부의 내용물과 연관 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케 한다. 예 컨데 빨간 고추가 그려진 보따리에는 정말 잘 말린 태양초 고추가, 꽃무늬 보따리에는 꽃이나 최소한 꽃과 관련된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이 함정일 것이다. 보따리 속에 정말로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의 작업의 포인트가 있다. 3. 박용일의 보따리는 세 가지 층위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보따리라는 기호가 있다. 그 기호 위에 덧 그려진 시각적 이미지 즉, 아이콘과 심볼이 있다. 그리고 보따리에 싸여진 내용물이 있다. 초기의 보따리에는 이 내용물들이 슬쩍 보이고, 밖으로 일부가 삐져나오기도 했다. 즉 무엇을 자신이 싸려 했는지를 보여주거나 노골적인 힌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그의 보따리는 무엇이 싸여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관습적으로 보따리의 내부에 겉에 그려진 것과 관련 있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어느 정도는 그것이 그럴 듯한 설득력을 같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은행나무가 그려진 보따리 속에는 가을이거나 가을 풍경이 제유법적으로 들어 있을 것 같다. 진달래가 핀 풍경 보따리에는 어떤 봄의 풍광이, 고서가 그려진 것에는 오래된 책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이 일종의 함정일 수도 있다. 시각적 이미지와 그와 연관된 빤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것, 짐작은 할 수 있되 명백하게 보여주지 않고 감추는 것이 보따리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보따리는 진자 보따리가 아니라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박용일의 작업은 그림, 보따리, 보따리 위의 이미지, 보따리에 싸인 어떤 것이라는 네 가지 기호가 한데 묶여 있다. 그의 보따리 그림은 세 겹이 아닌 네 겹의 층위를 가진 기호와 상상력의 묶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