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삭막한 일상에서 결핍된 평온함과 안정감을 제공해 주지만 때로는 낯섦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을 다니며 마주하는 풍경 속에서 그 당시의 감정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풍경을 마주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자연에 대한 감흥은 회상하는 시점에 따라 처음 마주하는 느낌과는 다른 이미지로 펼쳐지고 작품 안에서 뒤섞이게 된다. 나의 풍경은 사진이나 사생을 통해 화폭으로 옮겨지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물들은 경험이나 장소에 대한 감흥에 따라 분할, 재구성의 단계를 거친다. 이는 곧 실제 자연을 기반으로 둔 가상의 공간 혹은 기억의 공간으로 전개된다. 나는 자연의 외형을 오롯이 재현하기 보다는 자연물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패턴들을 발견하고, 이를 반복하여 나타내거나 점묘법으로 표현한다. 일상의 풍경을 단순히 조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풍경에 기억을 환기시키는 색감을 입혀 시간에 흐름에 따라 풍경을 바라보게 만들고자 한다. 이전까지는 한지에 수묵 채색으로 채워짐과 비워짐의 행위를 반복하고 여백을 통해 남겨진 공간으로 주변의 사물을 우회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풍경을 그렸던 반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캔버스의 특성을 살려 닦아내고 지워냄과 동시에 형체를 만들어가는, 기존의 작업과 개념은 같지만, 반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같지만 또 다른 느낌의 풍경을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인 동시에 역으로 자연으로부터 바라봄의 대상이 된다. 캔버스 속 어딘가에 내가 존재함을 상상하거나 풍경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삶을 되돌아보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