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벙커 역사갤러리는 SeMA 벙커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구축하는 공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곳의 역사를 떠올리거나 되짚어볼 수 있도록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는 동시에, 새롭게 SeMA 벙커를 대상으로 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영상을 기획하여 선보인다. 본 프로젝트를 통해 이 공간을 지속적인 상상과 생산의 장소로 전환해 나가고, 단순한 기록보관소의 의미가 아닌 미래에 전념함으로써 도래할 사유를 제공해주는 아카이브적 의미로 채워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층빌딩이 늘어선 서울 여의도의 버스환승센터 지하에 위치한 SeMA 벙커는 1977년경 대통령 경호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과거 암살의 위협에 대한 권력자의 공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개된 공간은 단지 넓고 평범해 보이는 장소일 뿐이어서, 사람들이 벙커에 대해 할 법한 많은 추측과 상상들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도시 한복판에 과거와 연결되는 비밀스러운 지하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타지는 깔끔하게 단장된 벙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곧 무너진다.
<암흑 물질>은 이러한 추정과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품은 최초에 이 공간을 기획한 허구의 건축가를 상정하고, 작품 자체는 그가 상상해나간 계획을 실현한 증거로서 제시된다. 그리하여 이 허구의 건축가는 1970년대 당시 과학계에서 제기되어 오던 ‘암흑 물질’에 자신이 매료되었으며, 그 상상의 개념으로부터 벙커를 구상하고 계획하였음을 고백한다. 그는 역사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아카이브 자료들에 대한 비밀스러운 해석들을 들려주며, 보이는 것과 기록된 것을 넘어 그의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상 <암흑 물질>에서 ‘벙커’는 스펙타클도 노스탤지어도 아닌,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역사적 물질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