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진, 정민주, 황예랑이 참여하는 전시 <바람을 거스르는 물고기>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와 의미 Myth and Meaning’에서 제목을 참고한 것이다. 인간과 동식물 등 모든 존재가 어우러져 살았던 시절, 강한 바람을 잠재우고 평화를 얻는 물고기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양한 환상과 이미지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신화의 세계관은, 논리나 실증적 합리성을 거스르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세 명의 젊은 화가는 화론, 도상, 재료 등 동양회화 전통의 방법론을 각각의 작업에 인용한다.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많이 생각한다는 것도 이 셋이 나눠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오래된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동양화 재료의 특성을 의식적으로 살려내려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권세진은 필묵의 사용과 준법을 사진의 특성과 연결시키거나 동양화’의 보기방식을 물리적으로 해석해 설치한다. 정민주는 도시 주변의 현수막을 수거하여 본래 있었던 색을 표백하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오색의 물건들로 조형물을 만든다. 황예랑은 가족, 종교, 자연에 대한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와 결합된 구조를 만든다. 장르의 경계가 불분명한 요즈음, 동양화/서양화의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여겨진다. 어떤 작가와 그림이 중요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특정 장르의 덕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좋은 작가’이거나 ‘좋은 그림’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동양화를 ‘회화’로만 바라볼 때 고유의 개념과 역사는 불가피하게 축소될 수 있다. 반면에 서구미학과 예술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동양화의 차별성이 여전히 어떤 불응의 미덕,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낳을 수 있다. 때문에 세 명의 젊은 작가를 초대한 이번 전시에서는 개별 작업의 풍부함과 함께, ‘동양 전통’에 가까운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이것은 동양화를 ‘보편적 회화’ 담론에 무반성적으로 녹여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서양-보편-현대’의 권위에 쉽게 희석되지 않거나 희석시킬 수 없는 견고한 가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