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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공작소 - Kikuchi Takashi展

봉산문화회관   I   대구
기억공작소Ⅰ『기쿠치 다카시』展
‘기억공작소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 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위대한 해석과 그 또 다른 가능성의 기억을 공작하라!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사건, 이후에」
기억을 더듬어보면, 2005년 갤러리M에서 선보였던 기쿠치 다카시菊池孝의 조각은 정지해 있으면서도 움직임을 감각하게 하는 자연의 에너지를 다루었던 것 같다. 당시 전시소개 글에는 나무 조각으로 공간을 연출한 하나의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기쿠치는 자연의 근원에 존재하는 에너지, 특히 나무를 휘면서 시각화되는 탄성과 중력의 긴장감 등을 탐구하며, 자연의 이치와 그 원리에 관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라 추측된다. 그 이후 오랜만에 기쿠치가 ‘애매한 기억’이라는 전시로 대구에 다시 나타났다. 30대 후반에 불상 만드는 일을 수련한 때문인지, 2013년 즈음부터 미륵彌勒과 범자梵字를 자신의 작업설계에 포함하기 시작했고, 이번 전시에서 전적으로 소개한다. 기쿠치에게 있어서 미술행위는 근원적인 자연에 접근하려는 작가 자신의 탐구로부터 나아가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등에 관한 예술가로서의 생각이며, 그 생각의 흔적 혹은 기억을 일깨우는 장치로서 미륵과 범자를 설계하는 행위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미륵보살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태어나기까지의 56억7천만년이라는 시간과 거리를 사유하고 시각화한다. 그는 현세의 미륵보살을 입체로 형상화하고 그 주위 벽면에 범자를 프린트한 긴 천을 설치하여 세상과 우주 -도솔천 Tusita 兜率天- 사이의 거리를 시각적으로 사유한다. 미륵은 구원의 불佛이며, 그 구원의 세상은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우리를 내려다보듯이 전시실의 천장 가까이 설치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물다가 잠시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인데, 그의 애매한 미소가 진정 우리들 인간이 갖고 있는 마음의 영원한 평화와 이상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애매한 기억」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범종 소리와 함께 미륵을 뜻하는 범자가 먼저 보인다. 다시 보니, 32개의 점이 범자 형상 위에 부조처럼 솟아있다. 이 서예 작업은 전시실 내부 4벽면을 둘러싸고 있는 23m 길이의 천에 576만개의 점을 프린트한 작업 ‘576 million dots’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서의 글자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면 범종소리가 울리는 자리에 실제 범종의 일부를 본떠 제작한 ‘소리의 오마주’가 우뚝 서 있다. 2.5m 높이에 폭이 좁은 이 작업은 나라시의 ‘동대사’ 절에 있는 범종과 그 소리를 채집하여 이를 다시 시청각적으로 그려내는 기억이다. 위를 올려다보면, 1m 폭의 천을 종이접기 하듯 정교하게 접어서 벽면에 두 단 혹은 세단으로 설치한 ‘576 million dots’ 작업과 이를 배경으로 벽면의 좌측 상단 높은 곳에 작은 황금색 미륵보살반가사유상 ‘perfume’이 설치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벽면 위의 천에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글자 형상이 보일 정도로 매우 작은 글자가 프린트 되어 있고, 그 글자는 32개의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설계는 이해와 접근이 불편한 이런 낯선 상태 속에서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시간과 거리의 규모가 재생되는 듯 현기증이 느껴지는 공간 연출이며, 대기大氣를 사이에 두고 영원한 평화와 기쁨과 이상이 가득해지는 공간 차원의 ‘애매한 기억’이다.
다른 반대편 공간의 좌측 벽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기억하고 그리는 ‘Meeting’, 바람이 닿는 촉감의 기억을 상징하는 ‘질풍’, 둥근 얼굴의 여인을 기억하는 ‘여성’ 등 나무작업의 기억을 떠올리는 조각들이 보인다. 그리고 가운데 벽에는 금색 ‘유비무환의 지팡이’ 2점을 사이에 두고 얼굴 사진 2점 ‘많이 먹어’와 ‘더 먹어’가 걸려있다. 이는 미술가 홍현기의 어머니가 작가에게 베풀었던 애정에 대한 기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우측 벽면에는 나무로 만든 미륵보살의 손 10개를 겹쳐서 불확실한 기억의 사유를 표현한 ‘기억의 잔상’이 보이고, 그 옆으로 생명체의 근원을 기억하는 염색체를 털실과 나무로 표현한 ‘XY’ 작업이 보인다. 또 전시장 밖, 지하와 1층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 공간에는 2011년 3월11일, 32m 지진 해일로 인한 재해와 대자연의 힘을 기억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염원했던 애드벌룬 작업 ‘Requiem’을 이 곳 장소에 맞게 재현한 작업을 볼 수 있다.



각각 다른 기억의 단편이지만, 그 관계가 유기적으로 체결된 이번 전시 ‘애매한 기억’은 기억으로 그린 커다란 공간적 회화처럼 보인다. 이 공간은 표면 위에 질료가 만나는 사건으로서 회화의 본질적 특성이 적용된 공간이지만, 더 나아가 예술가가 현실의 보편적인 일상의 장場에서 표출하는 생각과 행위, 인연因緣에 가치를 두며, 공간에 ‘그리워하다’ 혹은 ‘그리다’라는 행위를 회화의 질료처럼 대치시키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우주, 시간, 공간, 거리, 기억, 기록 등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이 애매한 개념들을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행위를 더하여 작가 자신만의 서사를 집적하는 또 다른 차원의 회화이기도하다.
기쿠치 다카시는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상실되거나 제거되었던 서사적 기억을 주목하고 자신과 우리의 애매한 기억 층 속에 이를 다시 각인시키고 있다. 이는 아마도 자연 혹은 생명, 평화, 기쁨, 치유와 그 관계에 관한 창조적 기억일 것이다. 본능적이라 할 만한 이 기억 설정은 전시에 의해 다시 공작되어 우리의 기억과 만난다.


전시 정보

작가 Kikuchi Takashi
장소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
기간 2018-01-16 ~ 2018-04-01
시간 10:00 ~ 19:00
화~일요일 : 오전10:00~오후19:00
휴관일 : 월요일
관람료 무료
주최 봉산문화회관
주관 봉산문화회관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53-661-3521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봉산문화회관  I  053-661-3500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봉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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