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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변주

갤러리아리수   I   서울
추억(追憶)함에 관하여
‘추억’은 과거에 어딘가 애틋한 색을 덧입히는 단어다. 지난 시간은 우리 자신을 이루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낭만으로 화하고, 그를 향한 향수는 지금 여기를 버티는 힘이 된다. 작가 손우아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쌓인 시간을 다룬다. 다만 그녀의 화면은 빛바랜 사진이 나 손때 묻은 편지와 다르다. 선명한 조각 하나하나로 짜낸 화면은 말 그대로 그때 그 시간을 쫓아(追) 헤아리는(憶) 집요한 ‘추억함’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추억> 그리고 <추억 조각> 연작은 각각의 추억이 가진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사물 혹은 인물의 형상을 담고 있다. ‘돌의 바다’나 ‘부여의 나무’처럼 가상의 공간을 가리키는 것만 같 은 제목이나 ‘뚝뚝뚝’, ‘또각또각’처럼 의성어를 쓴 제목을 가지더라도, 그 제목을 화면에 담긴 형상과 더불어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형상이 그려진 한지는 그 자체 시간이 겹겹이 쌓인 듯한 바랜 톤을 가지고 있고, 그 위로 선과 색이 배어들기에, 이 연작은 작가 개인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의 집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집합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림의 형상이나 제목에서 짐작되는 내용보다 그것을 다루는 공통의 방법이다. 모든 화면이 작가 스스로 ‘조각’이라고 칭하는 낱낱의 조형 단위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조각들 각자가 가진 뚜렷한 윤곽은 그보다 큰 형상 내에서의 구획이자 조각들 저마다의 안팎을 규정하는 경계이다. 그리고 조각들 대부분은 빨강이나 파랑, 노랑과 같은 선명한 색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추억이라는 내밀한 풍경은 아련하게 바래지지 못한 다. 어떠한 사물, 누군가의 얼굴, 그를 아우르는 정감(情感)은 그것의 면면을 이루는 파편에 이르기까지 쫓겨 선명하게 박제된다. 다만 이 추적의 목표는 과거를 객관의 질서로 정렬하는 데 있지 않다. 작가는 오랜 시간 자 신과 함께한 물건에서 그 세월이 도드라지는 순간, 그것의 무늬를 추억의 단위로 택했다. 아 껴 신던 가죽 샌들의 표피에 집적된 크랙(crack)을 추억의 형으로 삼고, 첫 해외여행을 다녀 온 가방에 물든 시간의 자국을 보며 추억의 색을 선명하게 채우기로 하였다. 추억 속 대상을 영영 간직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을 이루는 시간을 놓아버 릴 수는 없기에 택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각들은 작가 개인의 추억을 하나의 완벽한 장면으로 화하는 것일까? <추억>과 <추억 조각> 연작에서 조각들만큼 눈에 띄는 것은 색이 없는 조각이나 형상만 있되 조각으로 채워지지 않은 부분, 심지어는 형상도 조각도 없이 비어있는 공간이다. 예컨대 <추억-부여의 나무>(2012)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두꺼운 선으로 둘러싸인 최전면의 나무 형상과 그 안 을 빽빽하게 메운 원색의 조각들이다. 물감은 빛과 달리 색을 겹칠수록 명도와 채도가 낮아지 지만, 조각들의 쨍한 원색은 화면에 선명함을 더한다. 이러한 기법은 점묘법 회화를 떠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점묘법 회화에서 제각기 찍힌 점들이 멀찍이서 하나의 색으로 섞여든다면, 먹 의 새까만 테두리로 구분된 원색의 조각들은 결코 서로에게 섞여들지 않는다. 이처럼 밀도 높 은 조각들의 집합은 그 뒤로 보이는 나무, 조각으로 채워지지 않은 희뿌연 형상과 대비된다. 이 공간은 조각조각의 실체감을 더하며, 그들이 가진 모종의 움직임을 가늠케 한다.
이와 같은 구성은 추억을 하나의 완전한 장면으로 승화하는 데 이르지 못한 결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여러 번의 조형 실험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짜인 것이다. 추억의 내용이 숨 겨져 조각이라는 단위가 전면화된 작업은 조각들이 화면을 이루는 다양한 역동을 보여주며, 그러한 실험의 과정을 대변한다. 가령 명도의 차이만을 가진 흑백의 작은 조각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집착>(2013)에서는 제목으로 대변되는바 똬리를 트는 뱀처럼 끈질긴 움직임이 느껴진 다. 한편 <흩날리다>(2017)에서 조각들은 뚜렷한 테두리나 일관된 흐름 없이 빨강, 노랑, 파랑 의 물감 자국처럼 표현되며, 바람에 날리듯 겹쳐지고 흩어진다. 여기서 조각 각자의 움직임은 두드러지지만, 그것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최근작은 이러한 탐구가 집적된 결과다. 컬러링북의 한 페이지처럼 보이는 <조각 풍경-아빠 의 고향>(2017-2018)은 각각의 조각을 그리고 다시 그 안을 색으로 물들이는 강박으로 직조 된 커다란 화면으로, 일순간 보는 이의 숨을 옭아맨다. 그러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쨍한 근경 부터 산등성이가 흐릿하게 배어난 듯한 원경까지 시선을 옮기면, 조각들은 색과 무색, 안과 바깥, 형상과 배경을 오가며 때때로 층층이 나뉜 땅으로부터 나무나 불꽃처럼 솟아오른다. 색 이 배제된 <그날 이후>(2017)에서 이러한 역동은 더욱 촉각적으로 감지된다. 굵기와 농담을 달리하는 먹선으로 촘촘하게 그려진 조각들은 중심에 자리한 꽃의 형상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한편 꽃잎이다가, 잎맥이다가, 속을 다 내보이는 줄기이다가, 배경처럼 흐릿하게 뭉치고 흩어 지며 ‘그날, 이후’의 일렁임을 자아낸다. 도중처럼 보이는 화면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이토록 끈질긴 추적의 결과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자연과학으로 대변되는 선형적인 시간관에서 과거의 사건은 이미 일어난 사실, 시간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현재에 앞서는 완결된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인간 주관 의 시간성은 그러한 시간관으로 해명되기 어렵다. “과거라는 무미건조한 단어를 이름으로 가 진 그 실제의 시간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불러 주었을 때 그 시간들은 특별함을 가지게 된다. […] 추억의 공간 속 기억들은 시간의 흐름을 겪으며 더욱 선명해지거나, 사라지 거나, 대체되거나, 겹쳐지는 등 여러 가지 변형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한다.”(작가노트 중) 손우아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완성하는 것은 따라서 과거를 본떠 하나의 장면으로 매듭짓는 재현이 아니다. 각자의 강도를 가진 조각들과 빈틈처럼 남은 공간은 시간이 추억되어온, 그리 고 추억될 궤적을 가늠케 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업은 추억의 풍경보다 추억함에 관한 묻기 로서, 시간을 대하는 인간 고유의 태도를 대변한다. / 안수진 2018. 7. 3.

전시 정보

작가 손우아
장소 갤러리아리수
기간 2018-07-18 ~ 2018-07-23
시간 10:00 ~ 18:30
작가와의 대화: 07.21(토) 오후 2:00
관람료 무료
주최 갤러리아리수

위치 정보

갤러리아리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3 (관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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