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를 지나가는 일 빈 종이처럼 텅 빈 장소였다. 내가 항상 걷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저만치에서 바라보던 곳, 상상 속에 있는 어떤 곳, 무엇도 방해 받지 않는 걸음으로 가본길이었다. 그 곳에는 한 순간, 한 공간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이 있다. 무심히 지나쳐버린 것들의 흔적을 우연히 만났다. 창밖이나 문밖, 길 저편을 바라본다. 고독한 산책자처럼 무심히 시선을 던진다. 헷갈리는 풍경 속에서 모호하면서도 명로한 것을 찾는다. 촘촘한 바람을 본다. "풍경 속을 지나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다...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걷는 일은 곧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보면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리베카 솔닛 '건기의 인문학' 중에서) 모든 장소에 모든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바라보고 사물이 지닌 본래의 모습을 주시하는 일, 그것은 나의 내면을 찾아가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