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자신이 속한 세상을 평범한 시선이 아닌 새롭고 낯선 방식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작가 본인만의 개성적인 시각적 표현방식을 기반으로 대상을 형상화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석민영은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입장에 서서 자신이 살아가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건축물들로부터 작업적 영감을 얻는다. 인간의 편의를 주축으로 디자인된 하나의 기능적인 구조물로만 평하기에는 건축의 공간 안에는 건축가의 철학과 더불어 많은 역사가 담겨있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들에 흥미를 갖고 단순히 공간의 모습과 형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면의 모습과 그 안에 담겨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마치 건축가가 공간을 짓듯이 평면 위에 무수한 층위로 구축해나간다.
건축을 통해 읽어나갈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먼저 외형적인 측면을 통해 현 기술력, 기술이 발전하게 된 과정 및 계기, 그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된 현 사회의 모습 등 하나의 건축물을 통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유추하고 상상해나갈 수 있다. 사회적, 과학적 측면 외에도 인간의 심리와 정서 같은 감정적 측면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처럼 건축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함과 동시에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현대 건축물에 호기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탐색한 석민영은 결론적으로 건축을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확장될 잠재성을 지닌 공간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관객들에게도 건축물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작가는 중첩의 방식을 사용하여 하나의 건축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구조물들의 모습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시각화해나간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오일이라는 대조되는 성질을 의도적으로 교차함으로서 평면 위에서 다층적인 양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상이한 물성을 지닌 두 재료를 엇갈리게 반복적으로 그려나가고 그 위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행위를 반복하여 기존에 쌓아 올린 공간의 구조 일부를 의도적으로 훼손시킨다. 테이핑 제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흔적들은 육안으로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이는 공간의 형태를 구축하고 유지해나가기 위해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들을 관객들로 하여금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행위의 반복으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감은 시간이라는 비정형화된 추상적인 대상을 형상화해준다.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된 채 작업이 이루어지지만 작가 자신도 온전한 형태를 예측할 수 없기에 다양한 변수가 만들어 낸 형상들은 작가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 시각적 재미와 더불어 내면의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 가능하게 해준다.
건축물이 만들어낸 공간에는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건축 안에 녹아있는 사회적, 과학적, 심리적인 관점에서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이를 화면 위에 풀어낸다. 2차원 평면이라는 한계를 넘어 여러 개의 층위를 우연적인 효과와 더불어 의도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3차원의 공간을 역으로 응축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축 공간이 지닌 가치와 더불어 건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