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있는 것들 Plant Life 살아있다는 건 곧 터질 거품이나 공기방울처럼 순간순간의 세계에 있다. 거품은 손에 잡히지 않고 잠시 나타났다 사라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바니 타스 정물화에 인생무상이나 허무의 상징으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흔적 없이 흩어지는 시간과 같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허무의 지점이 아닌 찰나적 순간이기에 더욱 절실한 “오늘”이며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과 다르지 않다. 거품은 찰나의 순간이며, 동시에 삶을 이루는 하나의 유닛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볍고 또 가볍게 떠올라 사라지길 바라는 내 영혼의 상징과도 같다. 마지막 순간에 가볍게 사라질 수 있도록 매 순간 살아있고 싶다. 하지만 늘 살아있기란 때때로 쉽지 않은 일이다. 늘, 언제나 살아있기 위해서는 종종 대단히 많은 인내와 남모를 의연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내와 의연함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살아있음이 찰나의 순간에 존재하므로 매 순간 인지하고 만져질 수 있는 실재하는 그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의 것으로 붙잡는 작업은 생명을 박탈하여 영원함을 얻는 박제의 아이러니와 닮아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길건 짧건 필연적으로 유한하다. 그런데 영원한 것은 생명을 초월해 있다. 나는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일까, 생명을 박제하여 영원을 얻으려는 것일까?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거나 행복해서 죽고 싶은 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하고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들.....” 그리고 그것들의 “지금 꿈틀거림” 그 사이 어디쯤에 나의 그림이 있다. 남 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