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왕 같은 시기, 같은 크기로 쌍둥이 작품을 만든다. 그것은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추측건대 본능적인 균형을 찾기 위해서인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 여자와 남자, 빛과 어둠, 선과 악, 해와 달, N극과 S극 등 … 이와 같이 작품 안에서도 현실과 가상이 짝을 이룬다. 그리고 ‘레이어’는 어쩌면 그 사이에서 나온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현실과 가상, 두 공간의 연석이 중첩(레이어)이다. 겹치거나, 뿌리거나, 흩날리는 터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경계’의 지점은 A도B도 아닌 지점이다. 회색의 지대이다. 그 지대는 이쪽과 저쪽이 섞여있다. 그렇기에 현실-가상을 나누어놓기는 하였지만, 표현적으로는 둘이 섞이기도 한다.
수년 전 어느 날, 서울 시내에 있는 천문대에 가본적이 있다. 보름달을 보기엔 무척이나 춥고 구름 낀 날이었다. 주최측에서 강행한 행사는 고된 추위 함께 끝이 났지만, 소속 연구가의 달과 지구에 대한 설명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바로 달과 지구의 거리는 우리 은하계 모든 행성이 그 사이에 다 들어갈 정도로 아주 멀다는 것이다.
그렇게 멀고 먼 달에, 지구의 유일한 위성에, 우리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서양권에서는 'MOON'은 광기나 부정적 의미이지만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보름달은 소원을 비는 따뜻하고 신성한 존재이다.
나의 작업에서 나타난 달은 현실과 가상공간 사이에서 존재하는 중립적 존재이다. 단순하고 평평한 공간 사이 부유하는 레이어들 틈에서 나타난 달은 그 경계에서 중심을 잡듯 떠오른다. 달을 볼 새도 없이 바삐 사는 현대인들이, 가끔은 환한 보름달의 기운과 신비한 힘을 믿고, 자신의 소망도 이뤄보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