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창경 (窓鏡) 창경(窓鏡)’은 창문 창(窓)과 거울 경(鏡)자가 합쳐진 단어로 창문에 달린 유리를 뜻한다. 창경은 투명한 동시에 반사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시선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 보는지에 따라 창 밖을 보거나 창 자체를 볼 수 있다. 창경의 이중성은 두 작가의 시선과 닮아있다. 노현탁의 시선은 세상을 향해 있다면, 황지현의 시선은 개인의 내면과 심리로 향한다. 이와 동시에 노현탁의 세상에 대한 관심에는 자신이 투영되고, 황지현의 내면에 대한 탐색은 사회가 반영된다. 이번 전시를 접하는 관람자들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신의 내면을 사유하고, 개인과 사회 구조의 관계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블레스컬렉션
작가노트
미끄러지고 뒤틀린 창
이번 작업은 사회의 구조 속에서 특정 사건이나 사고가 인간과 마주치며 충돌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미끄러지거나 뒤틀린 흔적을 통해 인간과 사회 구조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다.
<어디에나 있는 곳> 어느 날 집 앞 우편함에 아파트 분양 광고 전단이 눈에 띄었다. 전단지에는 “어디에도 없는 곳” 이라 적힌 광고 문구와 함께 인상주의 명화를 차용한 건축물의 조감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차용된 명화는 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으로, 광고 이미지를 보면 마치 이곳에 입주한다면 유럽의 상류계층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흥미롭게도 이 전단은 전달하고 싶은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한국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나게 한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이 같은 아파트 분양 광고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리고 오직 상위 계층으로의 상승만이 성공한 삶이라는 믿음을 내재화시킨다. 이렇게 단일한 욕망과 믿음이 견고해진 사회구조에서는 더는 유토피아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곳은 이미 디스토피아적 세계와 가깝다. 작품 제목 <어디에나 있는 곳>은 전단의 문구 “어디에도 없는 곳”을 비틀어 디스토피아적 장소는 곳곳에 있다는 지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단일한 욕망의 상징을 시각화하기 위해 전단의 명화 속 인물들을 차용하여 회화로 재구성하였다. <코로스, 휴브리스, 아테>Koros, Hubris, Ate 1991년 발발한 걸프전은 당시 TV를 통해서 세계 각지에 생생하게 보도되었다. 아마도 현대전 중에 실시간 가까이 보도한 최초의 전쟁이었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다국적군들의 전투 장면을 보여주며 전쟁의 진행 과정을 보도했다. 당시 기억에 가장 인상 깊은 이미지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치솟는 거대한 불기둥과 자욱한 연기구름이다. 그런데 자료를 수집하는 중에 뉴스로는 접할 수 없었던 끔찍한 주검의 이미지들과 수없이 마주쳤다. 뉴스에서는 필터링으로 인해 인간의 죽음은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죽음의 고속도로”와 관련된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어떤 추상화처럼 보여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참혹한 장면이다. 이 이미지는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이라크 전차들과 차량의 잔해들이 가득한 도로를 상공 위에서 평면으로 찍은 기록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서 어떠한 끔찍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이미지 자체보다 당시에 뉴스에 보도되는 전쟁 상황을 영화나 게임 관람하듯이 바라봤던 나 자신의 시선이다.
작품 <코로스, 휴브리스, 아테>는 그때의 기억과 수집한 이미지들을 재구성한 회화작업이다. 나는 전쟁을 일으키는 동력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구조적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의 무분별한 포식성과 오만함이 전쟁이라는 파멸로 귀결되는 과정을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코로스는 포식을 뜻하고, 휴브리스는 오만함을 상징하며, 아테는 파멸의 여신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자본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전통적인 기독교 성화를 차용해 삼면화로 제작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미묘하게 가리고 모호한 상태로 보이도록 인물들의 채도를 낮추고 일그러뜨려 표현하였다.
<미끄러지는 초상화 시리즈> 타인은 내가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종종 서로의 소통이 미묘하게 미끄러지는 경험을 한다. 이 같은 경험은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일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본 작업은 이런 미끄러지고 뒤틀린 느낌을 회화로 작업한 초상화 연작이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나와 관계가 있는 주변 인물들로서 이들과의 미묘한 뒤틀림을 시각화하기 위해 저주파 자극기를 팔에 부착하고 형상을 그렸다.
■노현탁
현실 탈주- 순간의 환상을 비추는 거울
개인의 내면과 심리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거울(鏡)_ 나는 실제로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기도 하고,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한다. ‘창경(窓鏡)’이란 주제로 자신을 들여다보다가 현실 도피적 성향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것은 무작정 도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탈주(脫走)’의 모습이다. 버거운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과 잠시 단절함으로써 다시 움직이기 위한 탈주, ‘순간의 환상 좇기’ 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순간을 탐구하는 과정은 자칫 스쳐 지나가기 쉬운 감각과 감정을 포착하고 해부하는 과정으로, 자신과 문제, 현실과 이상 등의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여 바라보는 ‘거리 두기(distancing)’의 태도를 취한다. 건조한 현실을 의도적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또 다른 순간에서 잠깐의 동력을 얻으려는 나의 태도를 인식하고, 그러한 순간들을 관찰했다.
‘온실, 집을 나서다, 마주치다, 비집고 나온 말, 오늘의 안부, 노래하는 밤’
위 나열된 전시 작품들의 제목을 보면, 본인의 경험에서 그 순간의 감각과 감정을 포착하였다. 작품 <온실>은 본인이 들었던 ‘온실 속 화초’라는 표현에서 착안하였고, <집을 나서다>라는 작품은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기존의 틀에서 빠져 나와 한 걸음을 내디딘 본인의 태도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마주치다>라는 작품에서는 한 여자가 외벽이 허물어진 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치는 것은 여자의 모습이 아닌 뒤에 솟아오른 나무의 모습이다. 아래층과 위층에 걸쳐 나무가 솟아오르고, 불꽃이 피어 오른다. 아래층에는 식탁과 의자, 장식 테이블이 보이고, 위층에는 침대와 의자, 벽에 걸려있는 액자들이 보인다. 집의 공간을 구성하고, 거주자의 성향을 드러내는 존재들은 허물어지는 방에서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 불안정함을 띈다. 한쪽 방의 솟아오른 사람의 정수리는 공간이 비좁은 듯 불안한 분위기에 한 몫을 더한다.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감춰져 있던 욕망이 분출하고 기존의 것을 전복시키려는 의미가 있다.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자궁’, ‘식물’, ‘말풍선’ 등이 그러하다. 자궁(子宮)_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여성의 자궁 형상과 닮아있다. 식물의 재생성, 생식성과 자궁의 특성에서 유사성을 찾고, 두 형상을 결합하였다. 나에게 ‘자궁’의 의미는 여성이 가진 생식 기관, 또 다른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곳이자 매달 반복되는 신체적 통증으로 심리적 불안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내부에 존재해서 전체를 손으로 만지기 어렵고 눈으로 자세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신비롭고, 대부분의 여성이 공통으로 갖고 있지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점이 흥미롭다. 말풍선(Speech bubble)_ 주로 만화에 쓰이는 것으로 그림 이외의 공간에 만화의 등장인물이 하는 대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의 작품에서 말풍선은 사람이 아닌 식물, 신체의 기관, 건물, 풍경에 쓰임으로서 또 다른 발언의 숨을 불어넣는다. 말풍선은 글과 말의 내용의 유무를 떠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주체자의 존재를 강조하고 광범위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의미를 단정 짓고 일일이 해석하지 않기에 무수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작품 <비집고 나온 말>에서는 하나의 건물에 비좁은 듯 빽빽이 꽂혀있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건물이라는 틀을 벗어나 안주보다는 변화를 원하는 존재들이다. 일과를 마친 후, 다 뱉어내지 못한 말들이 입 밖으로 비집고 새어 나오듯 <오늘의 안부> 또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하루의 안부를 묻는 본인의 경험이 담겼다. 메인(main) 작품인 <노래하는 밤 03>은 귀갓길,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볼 때, 귀를 막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많은 사건으로 갈라진 틈을 촉촉하게 메꿔준 경험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음악 소리는 건조한 풍경도 반짝이는 불빛과 흘러들어오는 바람으로 마치 밤이 노래하듯 환상의 장면을 만들게 한다. 잠시 현실과 나를 단절 시켜, 내일을 끌어나갈 동력을 만드는 순간이다.
이것은 현실 탈주, 순간의 환상 좇기를 통해 결국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 황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