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주희는 그의 그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오버랩(overlap)한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나아가 서로 다른 기억의 겹침을 통하여 그만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다. 얼핏 사진의 몽타주와 같이 겹쳐서 그리고, 서로 짜 맞추어 그리는 그림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가 오버랩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추구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같은 사물이 서로 다른 물성을 띄기도 하듯, 같은 사람이 상반된 정체성을 가지기도 하듯, 세상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풍경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과 같다. 오히려 쌓이고 겹쳐야 좀 더 명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릴 때 보았던 이상한 광경이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야 비로써 이해되는 것처럼 이러한 겹침은 일종의 ‘숙성’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운 것들을 겹쳐 그린다. 겹쳐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욕망, 영원할 것 같은 찰나의 순간을 그림으로 담아낸다. ...... 겹겹이 쌓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시간의 오버랩, 기억의 오버랩, 장소의 오버랩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작가가 말했듯이, 작가는 어쩌면 자신의 그리움을 오버랩하는 작업을 통해 쌓여가는 인생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꾸어 말하면, 그 그림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궁극적인 자신의 작품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다’는 말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결국 그림으로 그리는 작가에게 참 어울리는 말이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작업. 작가의 그림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