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늬의 그림은 개들이 책을 읽고 있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인화된 개들은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거나 인간의 옷을 입고 다. 실내는 소파, 침대, 책꽂이, 거울과 액자 외에 다양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특정 공간에서 보내는 이의 삶을 보여주는 풍경이자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컴퓨터를 다루는, 지극히 보편적인 일상의 한 순간을 재현하고 있는 장면이다. 동시에 많은 책들이 곳곳에 펼쳐져있거나 진열되어 있다. 제목이 적힌 책등(책 제목이 쓰인 옆면)을 통해서 우리는 개들이 소유한, 읽고 있는 책이 어떤 것인지 은연중 엿보게 된다. 누군가의 서재는 한 개인의 취향, 관심사, 세계관, 지적 관심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거울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책들은 거의 미술과 관련된 것들이다. 화집과 미술사 책들이라 펼쳐진 책에는 그림이 등장하고, 그림 안에 담긴 또 다른 그림을 선물처럼 안겨준다. 그림을 통해 그림으로 들어가는 묘한 통로가 가설되어 있고 여러 작가들의 실제 그림이 참조되어 들어오면서 갤러리나 서점에 온 듯한 체험을 안긴다. 책의 표지(작가에 의해 부분적으로 변형된)나 그 안에 담긴 그림들이 모여 그림을 이루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그림 안에 한글과 영문이 섞인 문자와 그림이 공존하고 있고 개와 인간 또한 구분 없이 공생한다. 이것은 현실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림 안에서,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충분히 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