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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연 개인전 픽토하이쿠PICTOHAIKU

도로시살롱   I   서울
지난해 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첫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작가는 시詩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시인이 진행하는 수업도 들어보았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갑자기 시라니. 아니, 쓴다기보다는, 시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 시의 형식은 하이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란다. 그 형식을 빌어, 그림으로 시를 써보려고 한단다. 도대체 얼마나 짧길래, 그림으로도 쓸 수 있는 정도인 걸까. 하이쿠가 무엇인지, 사전을 찾아보았다.



* 하이쿠 はいく [俳句]. 명사. 일본의 5·7·5의 3구(句) 17음(音)으로 되는 단형(短型)시((본디 連句의 첫 구절이 독립한 것)). (=発句(ほっく))



이효연 LEE Hyoyoun은 그렇게 한 해 동안 오롯이 그림으로 하이쿠를 썼다. 그렇게 그리며 쓴 그의 시그림에 픽토하이쿠 PICTOHAIKU라는 이름을 붙였다. 추측할 수 있듯, 하이쿠haiku에 '그림의'라는 의미를 가지는 접두사 picto를 더한 것이다. 그림으로 쓴 하이쿠, 그림으로 쓴 짧은 시, 바로 이효연의 픽토하이쿠 PICTOHAIKU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소개하기 위하여 작가는 8편의 픽토하이쿠를 완성했다.



이효연의 픽토하이쿠 PICTOHAIKU는 대개는 세 작품이 한 편을 이루며 하이쿠의 3구(句)-3행 형식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다. 간결하고 축약된 언어로 표현된 하이쿠는 자간, 행간에 숨어있는 암시와 여백, 여유를 읽으며 침묵과 기다림 속에 상상력을 자아내고 암시적인 것을 이끌어내게 한다는데, 픽토하이쿠 역시 그렇다.



간결한 듯 보이나 많은 것을 구석구석에 담고 있는 이효연의 그림시들은 우리로 하여금 숨어있는 암시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한 편의 픽토하이쿠는 첫눈에는 각각 다른 광경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 각각의 그림-각 행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과 형식, 계기는 다양하다. 어떤 시는 첫 행(첫 번째 그림)에서 큰 틀을 보여주고, 점차 그 안으로 점점 파고 들어가며 디테일을 노래하는가 하면, 어떤 시는 같은 장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의 흐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가면서 그 순간순간의 화면을 분할하여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도록 노래하고 있으며, 또 어떤 시는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간에 바라본 모습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하나의 화면 안에 여러 시점이 동시에 존재하게 하면서 리듬감을 더해준다.



저 너머 Over There Beyondness (2020), 서로의 풍경 Mutual Scenery (2020), 그리고 초코하우스 Choco House (2020)는 바로 첫 번째 형식의 픽토하이쿠이다. 각각 석 점의 작은 그림들로 이루어진 이 세 편의 그림시는, 마치 사진에서 풍경을 찍고, 그다음 디테일 샷을 클로즈업하며 찍듯 표현되었다. 그런데 클로즈업을 할 때 우리의 시선과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인다. 처음 본 장면에서 시선을 떼지는 않지만, 동시에 우리 몸도 그 장면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가기도 하고, 옆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격자 창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과 푸른 식물이 인상적인 저 너머(2020)에서 작가는 처음에는 건물 밖에서 방을 바라보고,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창가 옆에 가만히 서보기도 했다가, 또 건물 옆에 있는 나무를 직접, 그리고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 위해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었을런지 나도 모르게 작가의 시선과 몸을 따라가며 움직이고 바라보며 또 함께 노래하고 있다. 그는 왜 거기에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 안까지 들어가서 굳이 다시 또 나왔던 것일까. 꽤 정성을 쏟은 것으로 보이는 벽돌의 다채로운 색감과 오렌지와 진노랑, 청록에 가까운 먹을 머금은 진초록, 그리고 민트빛의 세련된 색감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물 밖과 건물 안에서 보이는 햇살의 기하학적 모양의 변화와, 픽토하이쿠 저 너머(2020)의 마지막 행이자 오른쪽 끝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리하고 있는 초록잎으로 무성한 나무의 위치를 따라가보면, 이 시는 더욱 맛깔나다.



이효연의 픽토하이쿠는 작가의 예전 작업들과 미술사에 대한 작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함께 부르기 즐거운 노래이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기존 발표작들과 아직 발표하지 않고 실험 중인 신작들이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상상화들의 거실 Salon of Imaginary Paintings (2020)이 특히 그렇다. 2년 전 개인전 <친구꽃(2018, 도로시 살롱)>에서 이효연은 전시장 한 켠에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표현했던 기이한 모양의 도형과 형태들로 이루어진 드로잉들을 선보였었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지만 우리 머릿속에서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모양들. 다소 엉뚱하고 남다른 것을 좋아하는 작가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쓱쓱 그려낸 흥미로운 형태들이 아주 다소곳하고 클래식하게 그려진 실내 풍경 안에 자리하고 있다. 슬쩍 보았을 때에는 잘 꾸며진 어느 귀부인의 우아한 살롱 같았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니 실재할 수 없는 기이한 상상화들로 가득하다. 이 얼마나 유쾌한 반항이고 매력적인 실내장식인가! 상상화들의 거실(2020)에서도 어김없이 각 작품을 이어주는 장치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그림 오른 편의 스탠드는 두 번째 그림 왼편에 자리 잡으며 첫 번째 행과 두 번째 행을 연결해 주고 있고, 두 번째 그림 오른쪽의 푸른 식물은 역시 세 번째 그림의 왼편에서 이파리를 팔랑거리며 두 번째 행과 세 번째 행을 연결해 주고 있다. 세 줄로 쓰여진 이 시는, 세 그림으로 쓰여진 이 시그림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여백의 행간 속에서 여유롭고, 평온하다. 그 여백은, 그 행간은 우리를 쉬게 하면서도 강력하게 다음 줄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석 줄의 시를 읽으며, 석 점의 그림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운율을 탄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Who Can Say Who I Am (2020)은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와 북극해(1823-24)를 인용하고 있다. 앞서 상상화들의 거실(2020)에서 이효연이 자신의 그림을 재인용했다면, 이번에는 거장의 그림을 인용한다. 현대미술에서 명작을 차용, 인용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거장에 대한 오마주hommage이자 선배를 뛰어넘어보겠다는 치기 어린 도전이기도 하다.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숙연하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19세기 초반 낭만주의 독일 화가의 유명 작품의 주인공 방랑자를, 그의 또 다른 유명 작품인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북극해와 마주하게 하여 자연의 웅장함과 위력을 극대화하면서, 이효연은 고독한 방랑자의 뒤로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그렸다. 아름답지만 춥고 스산하고 위협적인 북극해를 바라보고 있는 방랑자는, 우리는, 사실 뒤돌아보면, 한 발짝만 물러서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선인장이 잘 자랄 정도로 뜨겁고 정열적인 아름다운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따스하고 화사한 정원은 20세기 초 클림트가 그렸던 정원을 연상시키는데, 글쎄. 선인장은 유럽의 정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이효연은 유난히 관계, 서로, 사이에 집중한다. 그가 야심 차게 그려낸 대작, 사이와 사이 Between and Between (2020)은 바로 그의 관계와 서로, 사이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가 독일에서 잠시 지냈던 작업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의 풍경을 그렸다는 이 작품은, 작가의 말처럼 세 개의 필터를 넘어가야 존재하는 풍경이다. 첫째는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창문의 유리,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작가가 위치하고 있는 건물과 바라보고 있는 건물 사이에 있는 공기, 더불어 그 사이에 있는 나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건물의 유리창. 이 세 필터를 넘어가야 비로소 작가가 보고 있는 대상들, 우리가 작가의 눈을 통해 보고 이는 대상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 다다른다. 과연 이 세 번의 필터링을 거치면서, 그 거리를 건너가면서 우리는 그 안의 존재를,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 하나의 화면을 스무 개의 작은 화면들로 나눈 작가의 시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어떤 운율로 다가와야 하는 것일까.



되돌아보면, 이효연은 언제나 시적이고 문학적인 화가였다. 꽤 많은 소설과 시를 읽은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전시의 제목들만 모아봐도 그렇다. <푸른 사이(2019, 희갤러리)>, <모두가 빛이 되고픈 시간(2019, 갤러리 아트비앤)>, <친구꽃(2018, 도로시 살롱)>, <환상통(2017, 비컷 갤러리)>, <내용이 사라져 버린 이야기(2015, 가비 갤러리)>, <풍경, 그리고 쉼표(2012, 두루아트스페이스)>. 나열하다 보니 무언가 이번 전시의 내용과 연결이 된다. <픽토하이쿠 PICTOHAIKU>에서 소개하는 여덟 편의 그림시들의 내용과 그간의 이효연의 작업을 총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사실, 하나의 장면을 분할하여 그렸지만 각각 독립된 작품들을 다시 모아 작가 자신의 내적 리듬에 맞추어 여백을 두며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구성하는 방식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작가가 시도한 방식이다. 화면 분할, 클로즈업, 시점 전환, 프레이밍... 이효연의 작업을 보면서 떠오르는 이 모든 용어들은 우연찮게도 모두 사진 용어들이다. 그가 사진을 공부한 것이나 사진으로 먼저 장면을 수집하고 그다음에 회화로 풀어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회화와 사진 기법 그리고 시를 공부하고 연구한 작가는 이제 픽토하이쿠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번 전시의 작업노트로 몇 년 전에 발표했었던 <내용이 사라져 버린 이야기>에 그다음의 이야기를 덧붙여 보여주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품었던 생각들이 하나, 둘 그림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행간에 시원한 바람 같은 존재이고 싶다는 어려운 꿈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싹이 나왔으니 지켜봐 주시면 관심을 먹고 그 싹이 자라날 겁니다. 픽토하이쿠는 그림으로 시를 만들어 보겠다는 허무맹랑한 저의 꿈을 밀어부친 시간들의 흔적입니다. (2020. 5. 이효연)"



그의 바람처럼 누군가의 삶의 행간에 시원한 바람 같은 존재가 되기를, 그의 작업이 우리를 그렇게 시원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그가 틔운 싹에 물을 주며 싹이 잘 자라기를 함께 지켜봐 주기를, 이 싱그러운 봄날에 이효연 LEE Hyoyoun 이 노래하는 픽토하이쿠 PICTOHAIKU의 운율에 몸을 맡기고 흥얼흥얼 노래하며 자유롭고 여유로운 힐링의 순간을 함께 즐겨보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글 임은신 큐레이터 / 도로시 dorossy 대표)
[출처] 도로시 살롱 이효연: 픽토하이쿠 展|작성자 기억의 미술관

전시 정보

작가 이효연
장소 도로시살롱
기간 2020-05-08 ~ 2020-05-24
시간 13:00 ~ 18:00
- 화, 수 : 15시-20시
- 목, 금, 토 : 13시-18시
- 일 : 13시-17시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주최 도로시 살롱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720-7230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도로시살롱  I  02-720-7230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5-1 (팔판동)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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