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 : 숨결을 드러내다 금번 <목판화 : 숨결을 드러내다> 전시는 판화장르 중에서 목판화의 독특한 특성과 실험적 형식,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한국의 판화는 서양의 판화기법과 형식들이 도입되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현대판화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의 목판화 형식과 기법은 제작기법의 까다로움과 결과물의 단조로움, 그리고 오래된 편견(회화의 보조수단)에 잠식당하면서 그 가치와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목판화의 가능성과 실험적 방식에 주목하며 다수의 작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전형적인 기법에서 탈장르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형식의 우수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목판화의 변화와 모색의 과정, 그리고 컨템포러리 아트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황찬연_dtc갤러리 큐레이터)
>> 김 억 작가 김 억의 작품은 높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과 끝간데 없이 펼쳐진 평원과 구릉들,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하천 들은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규모와 생김새의 신묘함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살며 몸과 정신, 그리고 감정과 기운은 그것에서 오는 영향을 받는다. 김 억의 목판화들은 장소의 경험, 즉 화가가 살고 있는 곳의 들과 산과 계곡, 수목, 그리고 휘돌고 감돌아 나가는 강의 체험과 불가분의 연관에서 나온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저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세계 공간을 사유를 통해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가고자 한다. 김 억의 목판화들이 일으키는 감흥과 내면의 울림은 일차적으로 지리적 공간감에 대한 고양에서 비롯된다. 화가의 목판화는 사물을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각경험에 갇힌 생활 반경에서는 겪지 못하는 우리에게 지리적 공간에 대한 전체적 조망과 열린 지각을 선물한다.(장석주, <풍경의 탄생>, 평론글 중)
>> 배 남 경 배남경의 판화는 사진을 목판화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석판화와 공판화(실크스크린)을 비롯한 동판화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그 구조가 성근 목판에다가 사진을 전사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지난한 형식실험을 통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독특한 색감이며 질감이 우러나오는 목판화를 제안하고 있다. 또한 먹과 한국화 물감을 사용해 한지의 배면에 충분히 스며들게 하기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반복 중첩시킨 그의 판화에서는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과 같은 먹의 색감이며 질감이 느껴진다. 색 바랜 흑백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시간의 결이 느껴지고, 그림의 표면 위로 부각된 나뭇결에 그 시간의 결이며 존재의 결이 중첩돼 보인다. 미미한 흔적을 남기거나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 덧없는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 기억의 끝자락을 따라 겨우 딸려 나온 것들이 그림과 그림을 대면하는 주체를 특유의 정서로 감싸이게 한다. (고충환, <나뭇결에 오버랩 된 존재의 결>, 평론글 중)
>> 이 언 정 작가 이언정의 유쾌한 도시는 낡고 권태로워진 도시를 다시금 변화하는 새로운 도시로 바라볼 수 있는 마법의 안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일단 저 유쾌한 도시를 보고나면 이제까지 우리가 보았던 도시는 새로운 색을 입기 시작한다. 작가의 도시는 박람회장처럼 잡다하지만 무질서하지는 않다. 그 안에는 현재의 도시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도시까지 포함한 세상의 온갖 도시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 서 있고, 작은 소리들을 낸다. 시선을 멀리 두고 보았을 때 도시는 마치 경비행기를 타고 비스듬하게 바라보는 도시처럼 나타난다. 시선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 도시는 작가가 공들여 배치한 소품들로 이 도시가 무언가 아주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선을 멀리, 가까이, 바깥으로, 안으로 옮기면서 도시들을 감상한 뒤에 한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사람들은 사라진 걸까. (정지은, <익숙한 그러나 낯선, 나만의 공간>, 평론글 중)
>> 이 은 희 작가 이은희의 판화가 갖는 특정성은 찍혀져 나온 이미지를 오려낸다. 이렇게 원하는 부분 이미지 조각들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들을 가지고 본격적인 공간세팅작업이 이뤄진다. 그림조각들을 벽면에 일정한 간격을 띄워 부착하기도 하고, 공중에 매달기도 하고, 드물게는 공간에다 세팅하기도 한다. 즉 작가의 작업에서는 흔히 그렇듯 이미지를 가두고 결정화하는 프레임이 따로 없다. 전시를 위한 벽면 자체가 거대한 캔버스로 돌변하는가 하면, 작가가 구상해놓은 어떤 가상의 방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모든 개연성들이 유기적으로 연속된, 일종의 벽면 드로잉 내지는 공간설치작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미지 조각과 다른 이미지 조각을 중첩시키기도 하는데, 이로써 한정된 평면에서 나아가 입체판화와 (공간)설치판화로까지 확장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고충환, <검은 여왕이 들려주는 끝이 없는 이야기>, 평론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