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작가 문수만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이전 작업과 최근 작업의 대표작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조형적 세계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의 최근작인 〈Cloud〉 연작은 쌀알을 동심원의 형식으로 화면 안에 무수히 증식, 배열한 추상 회화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나비나 새 형태의 꽃 그림’을 위치시키기 위한 청자 등 한국적 배경에 대한 여러 조형 실험의 결과로부터 기인했던 유물 이미지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즉 청자, 토기 등 한국적 유물의 3차원 형상을 2차원으로 평면화하는 〈Simulacre〉 연작으로부터 유물의 질감을 탐구하는 〈Fractal〉 연작으로 전개되고 이 연작들이 표방하는 원형(圓形)의 이미지를 작은 쌀알 이미지로 집적하는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Cloud〉 연작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견 달라 보이는 이 연작들이 지속하는 일관된 조형 의식과 그 미학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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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몰입이 표출하는 자유 의지 작가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향하는 ‘순환의 세계관’이란 그가 직접 말하듯이 니체(F. W. Nietzsche)의 철학적 메타포인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세계관과 만난다. 이 세계관은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 니체의 이 개념은 마치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닌 조형 세계에 대한 해설처럼 보인다. 니체에게서 ‘유일한 실재는 생성의 전체로서의 자연이며 생의 유일한 원리는 힘에 대한 의지’이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힘에 대한 의지’는 '더 많은 힘을 원하는' 본성으로 되돌아오길 거듭한다. 니체는 이러한 생로병사가 가득한 ‘현실의 삶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운명애(Amor Fati)’를 요청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 전반을 차지하는 ‘허무주의 사유’를 극복하는 유일한 긍정적 사유로 가히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수만의 작가노트를 살펴보자: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마치 유체역학에서 공기 저항은 속도에 제곱 비례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그만큼 역경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많아지고 몸에 부딪히는 맞바람은 더욱더 매섭게 다가온다.” 반백을 넘은 작가의 이 같은 진술은 종교 대신 예술을 택했던 그의 삶의 어려운 현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니체가 영원회귀론을 통해서 운명애를 요청했듯이, 작가 문수만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선택과 그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서 오늘도 운명애를 가슴에 안고 창작에 나선다. 그것은 예술 안에서 몰입을 통해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작가의 문수만의 작업관과 맞물린다. 이러한 차원에서 관객은 일견 이미지로 가득한 것으로 보이는 문수만 작업의 본질이라는 것이 ‘몰입 속 자유 의지가 남긴 여백’임과 동시에 ‘삶의 대한 성찰의 일단’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나의 여러 시리즈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몰입을 통해 자유롭고 싶은 의지의 표출’이다. 몰입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캔버스를 지배하게 만든다. (...) 화면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부품처럼 가득 차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체보다 여백의 공간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질서 속에 반드시 자유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규칙은 존재함을 의미한다. 질서와 규칙, 공간과 자유에 대한 표현은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