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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숲

갤러리 도스   I   서울
맘에 드는 책을 서재에 진열하듯,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시선이 머무는 순간의 부분들을 마음의 공간에 진열해본다. 벽이나 서재 안에 기대어 있는 캔버스는 마치 어느 화가의 휴일에 남겨진 공간과 같이 나른하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자리를 비운 화가의 공간에 들어가 감상하며 사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나와 타인, 공간과 캔버스가 좀더 친밀해질것만 같다.

 매일 아침 창 밖의 목련나무가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아침에 일어나면 블라인드를 걷고 나무부터 보게 된다. 빛을 받아 무채색의 가지가 황금빛을 띄고 어제 동그랗던 새순 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한다. 나무만 빛을 받고 뒤의 건물들은 회색빛이 되어, 마치 핀조명을 받은 나무가 주인공인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연극을 매일 혼자 보는것이 아까울만큼 짧고 찬란한 순간이다. 그 황금빛 아침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마음에 소유한다. 키우는 식물들도 봐 주어야 한다. 어느 부분의 잎파리들이 갈색이 되진 않았는지. 물이 모자라 쭈글해 지진 않았는지. 바람이 필요하진 않은지. 매일 산책을 하면서 집 앞 공원을 걸을때 보게 되는 나무들도 한 순간이 어제 같지 않다.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아침마다 보게되는 보물같은 순간들이 있다. 각기 다른 색감과 명도, 채도를 지닌 얇고 반투명한 잎사귀들이 후광을 받아 반짝인다. 어린시절 소풍에서 숲 안 보물찾기 시간에 한번도 보물을 찾아본 기억이 없다. 선생님들이 일부러 숨겨놓은 보물이 적혀있는 쪽지는 못찾았지만, 우연히 오래전 책속에 넣어둔 나뭇잎을 발견한 것처럼 문득 마음에 남은 어릴적 순간들은 떠오른다. 모래밭에 달려가 햇빛에 부서지는 빛나는 모래알을 한참을 바라봤던 순간. 강가에서 발견한 겹겹이 여러 회색빛이 감도는 납작한 돌에 매료되어 이리저리 돌려 보았던 순간. 등교길에 마치 인사를 하듯 흐드러지게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생명력을 느낀 순간. 호수에 비친 다이아같은 빛들을 망연히 바라보니 배를 탄듯 느껴졌던 순간. 자연이 숨겨놓은 보물들을 찾았던 기억들. 지나고 기억하니 소풍에서의 상실감을 보상받은 듯한 순간들.

  시선은 곧 애정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의 안부를 묻는 것과 같다. 자연을 관찰하고 누군가의 표정을 살피는 것은 그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그가 정말 괜찮은건지. 시선은 곧 소유다. 무언가나 누군가를 좋아하면 소유하고 싶어지는데, 그것은 그 사물이나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까이 두고 자주 보고 싶다는 의미이다. 누가 무엇을, 누가 누구를 진정으로 소유할 수나 있는 걸까. 때로는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가 무색할만큼 무언가를 마음에 두면 잡히지 않고 달아나기도 하고, 손 안에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면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옅어지기도 한다. 누구도 무엇을 영원히 소유 할수는 없을 것 같지만, 매일 넘치는 소유욕에 무엇을 구매하고 구애하며 사는 것만 같다.

  익숙한 공간을 매일 지나면 새로움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어제 본 나무는 어제의 나무가 아니다. 새로움은 익숙함을 견딜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시선이 익숙한 공간에 닿는다는 것은, 마치 마음에 남은 문학의 어느 한 구절이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삶에 낮은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깔아 가치있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과도 같다. 내가 보는 삶과 타인이 보는 삶의 시선들이 섞인다는 것. 지루해진 일상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만큼 근사한 것이 있을까.

하루마다 다른 모양과 빛의 나무들 안에서, 매일 주황빛의 색감이 미묘하게 다른 노을들 안에서, 그 순간만 주어진 보물들을 발견하곤 한다. 자연과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것을 마치 잠시 잠깐 소유한 것만 같은 착각과 함께 풍족함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찾은 순간의 보물찾기 쪽지들에는 어떤 글자가 쓰여져 있던걸까. 보물들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매일 이고 지는 삶의 무게는 가볍고 가벼워져 사라져버리고, 어느새 손안에 들어오는 한뼘의 캔버스가 자리잡는다.
 
​2022. 4월

전시 정보

작가 권구희
장소 갤러리 도스
기간 2022-05-11 ~ 2022-05-16
시간 11:00 ~ 18:00
관람료 무료
주최 갤러리 도스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737-4578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갤러리 도스  I  02-737-4678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7길 37 (팔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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