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작가 존 제라드의 <농장(카운슬 블러프, 아이오와)>(2015)은 시뮬레이션 작품입니다. 게임 엔진을 기반으로 3D 리얼 타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제작한 이 작품은 인터넷 검색 엔진을 대표하는 구글 데이터 센터의 모습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습니다. 느린 속도로 펼쳐지는 화면은 센터의 모습을 하나씩 드러냅니다. 한 켠에는 디젤 발전기가 돌아가고 다른 한 쪽에는 거대한 쿨링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화면 속 시간은 미국 아이오와 주의 표준 시간대를 적용하여, 그곳의 낮과 밤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러한 거대 데이터 센터를 인터넷을 ‘경작하는’ 농장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항상 이용하면서도 그 물리적인 형태를 상상하지 않지만, 인터넷은 사실 거대한 철골 구조를 기반으로 구동되고 있습니다. 3D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시뮬레이션이나 가상 세계를 직조해내는 작가 존 제라드는, 작품을 통해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데이터의 방대한 물리적 기반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고해상도로 구현된 시뮬레이션 이미지는 매우 사실적으로 나타나지만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 특유의 질감을 통해 현실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현실 세계를 가시화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현실 세계의 시뮬레이션은 영화가 아닌 파노라믹한 풍경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존 제라드(John Gerrard, 1974, North Tipperary, Ireland)는 3D 컴퓨터 그래픽과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태양광 에너지, 가상 화폐 채굴 기계, 데이터 센터, 대형 가축 농장 등 산업적인 소재들을 극사실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20세기 이후 발전된 에너지의 광대한 네트워크와 구조에 주목하는 작가입니다. 제라드는 이렇게 만들어진 3D 이미지를 주로 대형 LED 패널에서 재생하고, 이를 조각적인 형태로 설치합니다. 런던의 서머셋하우스, LA현대미술관, LA 팜스프링스 사막, 오카야마아트서밋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국내에서는 광주비엔날레(2020)에서 작품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