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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bbles(fragile phenomena) : 섬세하며 아름답지만 부서지기 쉬운 현상

갤러리 자인제노(Gallery ZEINXENO)   I   서울
버블 속에 담긴 달콤 쌉싸름한 인생

허나영(시각장 연구소)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세상에 태어난 후 반드시 죽는다는 절대불변의 원칙 속에서, 그 사이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용제가 꾸준히 천착해온 버블(Bubble)은 일견 예쁘고 달콤하지만, 곧 끝나버리는 허망한 쓴맛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동그랗고 투명한 버블 표면에는 주변을 비눗방울 특유의 아름다운 빛깔이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오묘한 이미지들이 수놓아져 있다. 그 알 수 없는 형상 속 달콤한 색은 만지고 싶은 욕망이 들게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없는 형상들이 얽혀 쉬이 터트릴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숨을 담아 점점 커지고 동그랗게 되지만 어느 순간 ‘팝’하고 터질 수밖에 없는 하염없이 가벼운 이 버블을 통해, 거대한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먼지 티끌보다도 작고 하찮은 존재인 우리가 연상되는 것은 뻔한 비유로만 치부될 수 있을까.

마이크로코스모스
최근 세계가 그물처럼 얽혀있고,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와 자연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더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와 있다. 또한 우주 시대를 바라보면서 ‘창백한 푸른 점’이란 말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언급처럼, 지구는 그저 티끌과도 같이 작으며 그 위에서 서로 반목하고 생명을 앗아가고 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지구에 사는 우리의 시각에서 우주는 거대하다. 하지만 먼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작은 세포처럼 소우주, 즉 마이크로 코스모스일 뿐인 것이다.
이용제는 완벽한 구형의 버블 연작을 그리면서도 2008년과 2019년 즈음 일그러진 버블을 그리기도 했다. <bubbles(light-source)-Mikrokosmos 02>도 일그러진 버블 속에 다양한 이미지들을 켜켜이 넣고 있다. 그런데 천사나 동화 속 이미지를 그리던 작품과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포탄이 터지거나 총을 쏘는 전쟁의 잔상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제작한 영상에서는 소리도 함께 담긴다. 총소리나 탄이 터지는 소리는 어찌 보면 버블이 터지는 소리와도 같다.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갖지만 말이다. 이용제는 우연히 듣게 된 전쟁에 참가했던 군의관의 회상과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전쟁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감정을 예술가로서 표현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마이크로 코스코스’라는 부제를 달면서, 생명이 꺼져가는 그 허망함을 담아낸다.
이러한 감정은 신화 속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번 전시의 <bubbles-사시화색(四時花色)>에는 5월, 6월, 7월의 장면이 담겨있다. 5월은 장미, 6월은 능소화 그리고 7월은 달맞이꽃과 함께 버블이 등장하는데, 그 속에는 각 꽃들이 가지는 신화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 있다. 장미의 가시가 되어버린 꿀벌의 침, 중국 후궁의 사연을 담은 능소화 그리고 달을 사랑한 인디언 소녀 로즈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님프가 마치 꽃들이 꿈을 담은 듯 버블에 담겨 있다. 대부분의 신화가 그렇듯, 그 이야기는 그저 꽃말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인공이 벌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고 바라던 꿈의 좌절이며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용제는 아름다운 꽃과 버블 속에 인간의 삶 속 모순을 담는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2008년에 그린 후 리터칭 하면서 그 의미를 확장한 <bubbles(fairy tale)-Winnie the Pooh>에서도 드러난다. 비눗방울들이 서로 응집되어서 붙어있는 모습을 동화 속 캐릭터의 ‘곰돌이 푸’처럼 담았다. 버블로 만들어진 푸는 푸른 화면 속에서 공중에 살짝 떠있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짧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용제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상을 표현하면서, 그 속의 의미를 풀어내고자 했다. 작가는 처음에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인 곰돌이 푸를 생각했지만, 이 동화의 작가는 오히려 힘든 인생을 살았으며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적이고도 다층적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실제 버블처럼 가벼운 듯한 이미지 속에 복합적인 의미를 내재화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버블로 된 곰돌이 푸의 이미지를 단순화하여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천에 반복적으로 찍어내면서, 마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hol)이 그랬듯 다층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빛의 굴절과 표면 장력
버블을 꾸준히 작품의 중심 소재로 다루어온 이용제는 그 속에 다양한 의미를 내면화하고 비유하면서도 동시에 실제적 물리적 성질도 고민한다. 그저 비눗방울이 만들어진 후 ‘팝’하고 터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투명한 성질로 빛이 투과되고 굴절된다. 또한 물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과 달리, 계면활성제와 글리세린 등이 결합되어서 표면장력이 만들어지고 잠시나마 완벽한 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버블 곰돌이 푸’처럼 여러 비눗방울이 결합되면, 일정한 평균 곡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미국 수학자인 제시 더글라스(Jesee Douglas)의 연구 중 겉의 곡면은 120도의 각을, 내각은 109.5도라는 점에 착안해서, 곡선이 이루는 각으로 패턴을 디자인한 천으로 <Bubble POP-Clutch bag>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비눗방울의 물리적 특성을 다르게 현실화하였다면, <bubbles(fragile phenomena)-cell division> 연작에서는 색을 넣은 비눗방울 자체를 종이에 찍어 그 물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눗방울들이 만들어지고 서로 엉키고 붙고 터지면서 떨어지고 색이 번지고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변화의 한순간이 그대로 포착되어 있다. 그간 이용제의 그림 속 비눗방울들이 완전한 형태를 넘어 그 속에 깊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면, 여기서는 현실 속 비눗방울들은 모든 것이 터져 그저 존재했었다는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겪고 바라고 꿈꾸고 있는 모든 의미와 상상 역시 이렇듯 존재 자체로 귀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용제의 비눗방울은 꿈과 같은 초현실 세상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비눗방울이 터지는 현실도 담고 있다. 이렇듯 꿈과 현실을 오고 가는 버블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서로를 비추며 생성되는 버블처럼
이용제는 이번 전시에서 반투명한 천 위에 한국화 물감으로 그린 <bubbles(fragile phenomena)-angel&flower>는 천 뒷면에 색을 칠해서 은은한 느낌을 준 배채법으로 버블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 이용제가 이전부터 해왔던 <bubbles(light-source)-Angel>처럼, 작은 천사를 담았다. 빛의 원천을 의미하는 작가의 천사는 동그란 원형의 화면 속 버블에서 웅크리고 장난을 치면서 빛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빛은 천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버블이 그렇듯 외부의 빛을 반사하고 투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빛은 이 작품에서 반투명한 천을 오고 가면서 보는 이에게도 와닿는다.
버블은 분명 찰나의 순간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찰나 동안 주변을 비추고 공기에 흔들리면서 우리와 만난다. 그리고 곧 사라지지만 존재했기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용제의 버블은 ‘바니타스(Vanitas)’라는 인간의 오랜 화두를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저 티끌만 한 우리의 삶 역시 존재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이용제의 버블은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생성되고 있다. 그 형태는 달콤한 동화이기도 하고 쓰디쓴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어떤 때에는 한없이 상상 속 세계이다가도 너무나 현실적인 물리적 대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버블에 대한 이용제의 다양한 고찰은 실상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확장할 버블 세계관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전시 정보

작가 이용제
장소 갤러리 자인제노(Gallery ZEINXENO)
기간 2023-11-01 ~ 2023-11-10
시간 11:00 ~ 18:00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주최 갤러리 자인제노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737-5751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갤러리 자인제노(Gallery ZEINXENO)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9-4 (창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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