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제목 (한글/영문) : 9년의 숲 / 9 years of forest 2. 작가명(한글/영문) : 최윤영 / Yunyoung Choi 3. 전시 기간 : 2024.02.14 – 03.04
4. 작가노트
나에게 그림은 건축으로 타인의 삶을 꾸려주는 것에 지쳤을 때마다 찾는 나만의 숲이다. 그림 그리는 나는 마우스 대신 붓을 잡고, 캐드 화면 대신 캔버스를 마주하고 온전히 나와 내 손 끝의 감각에 집중하는 또 다른 자아다. 그러나 내가 그 숲을 만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다. 복잡한 법규와 대지의 현황 속에서 타인의 취향과 삶, 타인의 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해 해답을 찾는 지난한 과정과 물리적 창작을 위한 건축적 고민, 여기에 구축해 내는 또 다른 그들이 있고, 그들과의 대화, 현실과의 타협, 문제해결을 겪다보면 내 정신과 사고 체계는 자연스레 도면과 디테일, 공법 속에서 헤매게 된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 있던 ‘건축가’인 내가 빈 캔버스에 붓으로 질펀한 숲을 만들어가려면 결국 현실에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야 한다. ‘건축’을 떼어내고 오롯이 그냥 ‘최윤영’이 되어야 물감이 섞이고 붓질이 숲이 된다. 오롯이 원래 나의 본성대로 조금은 게으르고, 뻔뻔하고, 즉흥적인 내가 되어야 그림과 가까워진다. 때문에 내 건축을 시작하면서는 좀처럼 건축이 놓아지지 않았고 그림을 그리면 자유롭지 못했고 숲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면 누군가는 ‘건축을 그려!’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소재의 문제라기보다 이원화된 나의 정신과 자아에 대한 문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숲은 실존하는 숲에서 영감을 얻지만 결국 내가 구축해 낸 나의 숲이다. 그림의 시작을 만드는 ‘내가 봤던’ 하나의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캔버스에 중심이 되는 것이 그려지고 난 뒤는 캔버스마다 이끄는 이야기를 따라 장면을 전개해 나간다. 계산하고 계획해서 사전에 드로잉 해 보고 만드는 숲이 아니라, 각각의 캔버스에서 내 손을 떠난 물감이 쌓아가는 회화성에 집중하는 숲이다. 그래서 동일한 장면에서 시작한 작업들도 출발점은 동일하지만 두 세 번의 붓질 이후에는 다른 숲이 된다. 이후 단번에 빠르게 그려내는 숲도 있고 몇 주를 걸쳐 그려낸 숲도 있다. 또 한참을 중단하고 구석에 버려두었던 것이 갑자기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 포트폴리오에 절대 같은 숲은 없다. 그리는 날과 시간, 그리는 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모두 다른 숲이 자란다. 즉 나의 숲은 온전히 그리는 시점과 그때의 정신이 그려낸 그 당시 일시적 내 자아의 표상이며, 이미지화된 자아의 표상이다.
이번 개인전 ‘9년의 숲’은 그림을 그려온 9년 간의 작업을 모아 본 자리다. 2016년 이후 이런 저런 전시를 했는데, 그림마다 대개 1번씩 전시에 나간 후 나의 작업실과 사무실로 돌아와 우리 부부와 사무실에 방문하는 분들을 만나고 sns에서 종종 배경이 되어 주었다. 그림을 쉬고, 그려내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지만 햇수로 그림을 그린지 9년이 된 지금, 한 공간에 첫 숲부터 24년 1월의 숲까지 걸어 내 이야기를 제3자가 되어 바라보고 싶었다. 그림이 잘 되던 때의 숲과 그림 슬럼프를 넘기 위해 애썼던 때의 숲과 겉멋 들었던 때의 숲, 온전히 나였던 숲을 대면해야 앞으로 다시 숲을 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는 그런 나를 대면하고 반성하고 다짐하기 위한 그런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