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사업의 목표는 노후 된 주택을 새로운 도시주택 형식으로 탈바꿈하여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 상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저소득층 거주민에게 또 다른 낙후 지역으로의 이주를 강요한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연속된 이주는 마치 하나의 순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작업 또한 재개발 지역 거주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수년의 일상 속에서 마주했던 풍경들은 순식 간에 철거되었고, 현장은 시체에 수의를 씌우듯 파란 방수포로 뒤덮여 버렸다. 그곳에 선 나의 모습은 마치 자연재해 앞에 선 무기력한 인간과도 같았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의 사건으로 작업의 계기가 되 었다.
작업 초기에는 재개발지역의 원경을 묘사함으로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노스텔지아를 담았다면 최근에는 한걸음 내딛어 그 내부를 말하고 있다. ‘into The Blue’에서는 도시의 수많은 집을 유기체 로 가정하여 개별적 초상으로 표현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재개발로 인한 철거는 집의 갑작스런 죽음이 라 여겨졌고, 마치 영정 초상화를 그리듯 대상을 대하였다. 이를 통해 사라져가는 집을 애도하고, 사라 져가는 인간적인 삶, 그 속에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우울함과 상실감에 대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작업 전반에 등장하는 길고양이를 통해 도시 내부에 생존하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자 했다. 일정한 주기를 거쳐 파괴되고 생성되는 재개발의 과정 속 인간이 사라진 도시에는 길고양이 만이 떠나간 인간의 망령인 양 재개발 지역의 포식자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곳의 인간들처럼 길고양이 도 배부를 리 없고, 결국 죽거나 떠나간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 속에서 길고양이는 거주자, 이주자, 포식자, 자아 등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한 ‘방황’의 아이콘이자 불안한 현대인의 초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깜깜한 하루_ A BLANK DAY’로 범주되는 본 작업에서의 길고양이는 좀 더 사적인 의미에 가깝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작업실의 일상 속에서 마주했던 나의 자화상이며, 도시의 공허한 하루를 그린 생존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