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 온몸으로 느껴지는 계절감, 시간적 정취들을 수집한다. 길을 걷다 멈추게 되는 장면들, 자기만의 질서로 어우러져있는 풍경의 이미지들을 포착해본다. 풀숲의 이미지, 들꽃과 나무, 빛깔, 드리워진 그림자, 일렁이는 바람, 어떤 날씨의 분위기 등 말랑한 계절의 변화들은 각자 고유한 시간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림 속 이미지는 내가 살아가는 보통날에 대한 표상이다. 간직하고 싶은 일상 속 순간이자, 누구에게나 스쳐갔을 시간의 풍경인 것이다. 펼쳐진 녹음과 들꽃, 화단의 풀 더미과 같은 자연 요소들은 나에게 어떤 편안한 정서와 생명력을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동력이 된다. 자연물이 가지는 특정한 형태와 배열들이 마치 들숨날숨 처럼 리듬을 가지고 펼쳐지고 호흡한다. 작업의 구성은 계절감이 느껴지는 풍경에 대한 감상적 기록이거나, 피어오르는 식물들의 모양에 집중한 이미지로 이루어져있다. 스친 햇살과 나무의 라인, 군집을 형성한 풀 더미, 꽃의 형태와 같은 것들이 그림의 요소가 되었다. 붓질, 선, 터치들은 서로 혼합되어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색 면의 혼합과 함께 때론 모호하기도 하고 때론 구체적이게 드러난다. 캔버스 위의 이러한 회화적 기록방식을 통해 나는 평범한 주변의 장면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 하루를 채운 풍경에 대해 잠깐의 사색과 관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의무와 책임들로 바삐 흘러가는 삶의 어느 틈 사이에, 나는 오늘도 산책을 하고 형상을 기록한다. 또 다시 피어나는 계절, 나의 그림들이 다가 올 날들의 소소한 가치에 대한 친절한 예고가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