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넓은 맥락에서는 물리적 실재를 어떻게 인지하고 회화의 영역에서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이거나 메타회화적인 이슈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물리적이거나 때로는 정치적이기도 한 한계상황의 표현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고 있다.
인간은 종종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고 느끼는 한계상황에 마주치고는 한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어렸을 적 선천적 유아백내장의 수술 이후 시각적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인물을 명확히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갑작스러운 사람들과의 가까운 접촉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 다른 물체의 인식이나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상황들도 의자나 컵 따위의 물건처럼 인간의 마음 속에서 가치판단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는 하나의 상황일 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맥락이 달라진다. 대상을 가치판단 없이 인식함으로써 점차 세상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한계를 물리적인 영역과 심리적인 영역 사이에서 인지적으로 연결 짓게 되는 지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캔버스라는 작가와 밀접한 매체에서도 유사한 속성을 발견하였다. 나는 캔버스가 이미지의 영역을 프레임으로 제한하는 성격, 무게와 부피를 가진 물질로서 캔버스 스스로가 가지는 물리적 영역, 내가 작가로서 캔버스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제약, 그리고 건축공간에 전시됨으로써 생겨나는 공간적 한계에서 한계영역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수용하고 이용하여 작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인물의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한계상황을 드러낸다. 한계상황을 다루는 작업이 관객에게도 한계에 대한 인식의 환기를 일으키기를 원한다.
나의 작업은 나에게 시각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긴밀한 영향을 미쳐온 대상인 인물을 소재로 삼는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실제로 인간이 한계상황에 대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자세 중에서 밀거나 매달리는 등의 자세를 추렸다. 이러한 자세는 인물이 단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그 영역을 이용하거나 대항하려는 의지 또한 포함한다. 여기에 더불어 배경의 맥락을 대부분 생략한 채 그림으로써 구체적인 가치판단이 어려운 상태로 가공하였다. 이러한 장치들이 관객이 한계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주도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날렵한 붓질로 물감의 물리적인 상태 그대로를 노출시키는 한편 빛에 의해 단순화된 것처럼 보이는 색상이나 외곽선이 뚜렷하지 않게 그리는 방법으로 쉽게 사라져버리거나 부서져버릴 것처럼 보이는 인물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이러한 붓질과 색상은 나의 선천적 시각장애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정체가 없이 초점이 맞지 않고 흐리고 뿌옇게 보이는 그대로를 수용하여 실제 보이는 대상을 그리는 방식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그리기 방식을 통해 주어진 상황 속에 있는 대상을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보듯이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