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된 이미지를 이용하여 기억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정규형은 시간의 흐름 위에서 자신만의 시각적 질서를 만들어간다. 그의 작업에서 인쇄된 이미지, 메모, 오래된 사물과 같은 남겨진 것들은 단순한 물리적 흔적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 존재들이다. 어린 시절 신문 더미와 스크랩으로 점유되었던 집에서 느꼈던 폐쇄적 압박감은 이제 그의 작업 속에서 시간과 기억의 흔적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작업 방식으로 소환된다. 정규형의 작업에서 수집과 축적은 단순한 저장 행위가 아니다. 그가 수집한 이미지의 파편들은 자신만의 질서로 서로 엮이며, 그 속에서 잃어버린 순간을 되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로 연결된다. 이는 과거의 강요된 강박적 세계를 벗어나 상처를 품고 있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위로하는 치유 행위이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과거의 조각들은 현재와 얽히며 개인적 경험과 서사적 맥락을 연결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사물과 기억은 단순한 회상을 넘어 현재를 구성하는 살아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수집된 시간과 기억으로부터 또 다른 세계의 층위를 담아내는 이번 전시는 내면에 존재하는 오래된 자신과 만나는 뜻밖의 장소로 우리 모두를 초대할 것이다. 글 변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