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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언어들이 침묵하는 곳

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   I   서울
순환하는 감각을 끌어내는 침묵의 언어

글. 안진국(미술비평)


이것은 아주 오래된 것
그러므로 새로 당도한 것
모든 말이 씨앗이 된다면
빛을 나르던 심장 속에 잠들어 있겠지
- 황경숙의 ‘플랑크의 시간’ 중

거대한 에너지의 세계
존재의 본질을 찾는 여정의 종착지는 존재의 상실이다. 모든 물질은 형상을 잃고 하나의 세계로 수렴된다. 원소로 이루어진 물질의 여정은 원자를 거쳐, 원자핵보다 작은 소립자를 지나, 관찰할 수 없는(된 적 없는) 플랑크planck까지 이르게 되면, 그 형체가 사라진다. 존재의 상실. 하지만 그곳에는 에너지가 있다. 끈으로 이루어진 에너지가 형체가 사라진 곳에 존재한다. 소립자나 쿼크quark보다 훨씬 작고 가는 이 에너지 끈은 1차원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파동을 만든다. 이 진동과 파동은 나를 만들고, 너를 만들고, 나비를, 의자를, 자동차를, 비행기를, 공기를, 물을 만든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이 1차원적인 에너지 끈의 진동으로 만들어진다(초끈이론; super-string theory). 비로소 존재의 구분은 의미를 잃고,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라는 본질이 그 얼굴을 내민다.
이 우주에서 물질적 실체란 없다. 나비나, 의자나, 비행기나, 공기나, 물도 없으며, 결국 너와 나도 없다. 그저 우주는 하나의 에너지 집합체이다. 질량은 단지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으로 모든 입자들에 부여되는 허상일 뿐이고, 물질은 우리가 에너지를 관측할 때 입자화된 형태일 뿐이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세계이며, 만물이 하나라는 동양철학과 맞닿아 있는 세계이다. 그리고 작가 에이림이 살아있는 감각으로 느끼게 된 세계이며, 그가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시기를 지나면서 다다른 여정의 종착지이다.
* 표준모형의 소립자들이 힉스Higgs 입자를 통해 질량을 얻는 과정


유동하고 증발하고 떨어지는
너와 내가 구분이 없고, 생生과 사死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끊임없이 진동하며 파동을 만드는 에너지의 세계, 에이림은 이 세계를 품고 자신의 감각을 화폭에 그린다. 작가는 양자역학의 아원자**적亞元子的 세계이며, 끊임없이 변하고 생멸이 일어나는 불교의 현상계와 같은 세계를 무단히도 사유한다. “모든 것은 변하기에 잠시도 고정되지 않고, 고정된 참된 자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제행무상 제법무아諸行無常 諸法無我’가 작품에 스민다. 에이림의 사유에는 ‘물’이 중심에 놓여있다. 물은 그녀가 ‘애도哀悼 작업’이라고 명명한 2010년부터의 몇몇 작업에서 소재로 선보였다. (애도를 주제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것이 2012년과 2013년의 개인전 《기묘한 여정》과 2014년과 2015년의 개인전 《가변적 질서》를 지나면서 물의 잔치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대부분에 물이 등장하며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물을 그리는가? 물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가는 왜 그토록 물의 유동과 변화를 집요하게 탐구하는가? 그것은 물이 가진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근작에서 에이림은 물의 변화, 특히 파도와 증발에 주목한다. 이것은 불교에서는 종종 현상계를 물과 파도로 비유하고 있음을 떠오르게 한다. 물이 위아래로 출렁일 때, 봉우리가 된 파도는 마치 물에서 독립된 실체로 보인다. 하지만 그저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물의 깜박이는 눈짓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현상계의 독립된 실체는 없다. 또한 파도는 물이 있기에 존재하고 물은 파도로 자기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 물과 파도는 결국 동일하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은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를 가진다. 에이림은 이러한 사유 속에서 어느 순간 고정되지 않고 언제나 변하는 세상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어떤 모호한 경계를 포착한 듯하다. 그리고 물질적 실체에 대한 의문과, 각기 다른 연속적인 경험을 통해 아무 것도 상주常住하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변모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물을 떠올렸다. 액체 형태의 물은 얼음으로 굳어질 수도 있고, 수증기로 기화氣化될 수도 있기에, 물은 고정되지 않은 세상을 상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작가의 그릇이 되고 있다.
에이림의 작업에서 물은 바다가 되고 파도가 되고 물결이 되고 비가 되고 수증기가 된다. 유유히 흐르다가, 일순간 부딪혀 부서지고, 기화되어 하늘에 오르고, 액화되어 다시 바다로 떨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물의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의 대화 가 난류와 한류를 만들고, 바람의 호흡이 물결과 파도를 만들고, 태양의 과도한 관심이 수증기를 만든다. 그리고 하늘을 떠돌다가 차가운 대기의 쓰다듬음에 응결하여 세상을 씻어내는 듯 바다로 다시 내려온다. 이렇게 모든 것은 다른 것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과정에서 생의 순환이 일어난다. 이러한 물의 변화와 순환은 작가의 작업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로 표현된다. 탄생과 죽음에 대한 사유, 너와 나에 대한 관념, 실체와 본질의 관계.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에너지의 집합체로 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이것들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하는 삶의 일부이다. 그래서 그 구분은 모호하고 규정할 수 없다. 작가의 작품에는 위와 아래의 구분이 모호하고, 단단한 것과 유동적인 것을 섞여 있으며, 안과 밖이 함께 존재한다. 하늘이 있어야할 공간(위)에 새로운 물의 장場이 펼쳐지고(<함께 호흡하기>, <7월, 새벽6시> 등), 물이 절벽이나 동굴과 같이 좌우로 세워지고(<당신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높이 솟은 파도는 찰나의 순간 겹겹이 산을 이루며 단단히 굳어진다(<산수山水>, <야성의 치유> 등). 구분의 모호성은 ‘물’이라는 시각성으로 환원되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이다. 가느다란 빗줄기는 일시적으로 뭉쳤다 흩어지길 반복하며 존재의 형성과 사라짐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세계 이전의 세계>, <그 모든 언어들이 침묵하는 곳> 등), 물 속에서는 마치 물 밖인 듯 기화된 수증기가 하늘로 오르며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트린다(<7월, 새벽6시>, <함께 호흡하기>, <잊혀진 감각> 등). 이러한 빗나간 물리적 세계는 본질적 세계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시각적 교란 속에서 보고 있는 것 너머를 사유하게 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바로 ‘형체가 있는 것도 실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실체가 없는 것도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동양적 관점은 양자역학에 맞닿아 있다.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에서 물질은 입자와 파동(에너지)의 이중성 가지고 있지만, 입자와 파동이 동시적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한다. 즉, 입자이거나 파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이 입자화(물질화)되어 구분될 때는 관찰자의 관측 했을 때일 뿐이고, 파동으로 존재할 때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서로 연관된다. 물질이 파동이라는 사실은 나를 구성하는 물질이 저 세상 끝에 있는 다른 물질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추론, 변화 가능성의 추론을 끌어낸다. 작가는 존재를 파동으로 본다. 그래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때문에 하나의 존재가 모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가능성을 작가는 ‘피어나는’ 형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녀의 작품은 꽃이 피듯 파동의 실타래가 피어나고(<우리가 피어나는 순간>), 영적 존재가 배회하듯 증발하는 물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야성의 치유>, <잊혀진 감각>, <그 모든 언어들이 침묵하는 곳> 등).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세계에서 작품으로 피어나는 변화는 분명 감상자에게 어떠한 자극을 주고, 이 자극은 그의 삶의 작은 부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감상자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겹겹이 쌓인 작업의 시간성과 영적인 푸른색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단단히 응축해 놓는다.
**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 원자보다 작은 입자

그 모든 언어의 침묵
“목소리란 말을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말은 마음이나 가슴으로 하는 것. 목소리를 통해 말을 하면 사소하고 불필요한 대화에 빠져들기 쉬우며, 정신적인 대화로부터 아득히 멀어진다.” 에이림이 10년 전에 읽었다는 말로 모건Marlo Morgan의 『무탄트 메시지』(2003)에 나온 내용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의 하나인 오스틀로이드(참사람 부족)가 살아가는 문명인과 다른 삶을 적은 책이다. 에이림은 이 책에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특히 마음의 언어에 대한 일화를 잊지 못한다. 그 일화는 물을 찾을 때 앞서가는 한 사람이 먼저 물을 발견하면 뒤따르는 일행들에게 마음속으로 신호를 보내서 물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는 내용이다. 마음의 언어는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지만 문명인이 되면서 서로 감출 게 많아져서 그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에이림은 말(언어)의 소통 과정에서 많은 왜곡이 있음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녀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침묵의 언어로 감상자에게 말 걸고 싶어 한다. 한 사람의 호흡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다른 사람과 동물, 사물과 연결된 끈과 같아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 인류를 넘어서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존재임을 자각한 에이림은 이제 자신의 작은 몸짓으로 일궈낸 작품을 우리에게 내비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면서 우리에게 침묵의 말로 자신의 세계에 초청하는 초대장이다.

전시 정보

작가 에이림
장소 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
기간 2016-07-30 ~ 2016-08-23
시간 11:00 ~ 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주최 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721-9870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  I  02-721-9870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옥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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