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헌 작가는 지난 10 여년 작품 활동의 터였던 서울과 런던에서,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존과 부재의 교차점을 넘나들며 친숙하면서도 개성적인 분위기와 색조의 판화작업을 선보여 왔다.

오늘, 작가는 여기서 나아가 『프리환기 Prix Whanki』 2016 당선작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 <내가 꽃이었을 때 When I was a Flower>를 통해 작가로서 또는 관람자로서 작품과의 새로운 만남을 권한다. 결과로서만 보여지던 작품 존재의 속성을 뒤집어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작품’이라는 결정되고 완성된 결과를 강조하는 대신 결과 속에 감춰지고 생략되며 함축된 탄생의 ‘전개과정’을 드러내 펼쳐 보인다. 작품 탄생의 과정에 동참하는 우리는 작품의 세계 역시 삶의 생존 과정처럼 시간과 공간과 마음의 나눔과 공유에 의해 바뀌고 실패하거나 성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작품 공간의 ‘접촉 가능성’을 확장시켜 보다 밀착된 만남과 교감을 키우고 이는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여 새롭고 확장된 해석을 꿈꾸게 한다.

<내가 꽃이었을 때 When I was a Flower>에서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매스Mass에 함축된 ‘과정 Process’: 목화씨를 심어 싹을 틔워 키우고, 수확한 목화솜이 판화지Cotton Paper로 제작되어 판화로 구현되기까지 차곡차곡 쌓이고 숨겨져 있던 과정은 시간을 기반으로 공간 속에 생성된 요소들이 전시공간에 가시화되는 전개도이다. 작가의 기획과 노동에 의해 조형언어로 재탄생되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시간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과정을 살피고 교감하는 이 공간에서 누리는 우리의 시간이 결국 하나의 매스Mass로서의 작품을 형성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전의 (판화) 작품이 오롯이 작가만의 여정이 투영된 한 방향의 내러티브였다면, <내가 꽃이었을 때 When I was a Flower>는 작품공간-매스Mass에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느끼며 내뿜는 호흡이 드러난 ‘과정의 면’에 녹아져 전시공간(=작품)으로 투영되는 시공간의 스토리텔링이다. 이 때 작가의 창작행위의 과정이자 결과로서의 작품과 관람자가 접촉하고 교감하는 것이 작품을 형성하는 과정에 깊고 다양한 반향을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이 공간은 단순히 작가만의 시간의 정원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산책과 교감의 대화가 씨앗으로부터 싹을 틔운 시간의 기도에 물을 주고, 목화솜을 수확하기까지 작가의 창조적인 노동의 시간에 양분을 보충시키는 시간의 축적이다. 마침내 <내가 꽃이었을 때 When I was a Flower>의 공간은 전시시간이 흐를수록 다채로운 교감의 디테일이 더해지고 더욱 풍요로운 발색과 분위기의 작품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