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음악가이신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악 경험을 하였다. 해금, 단소, 플루트, 피아노 등의 악기연주와 풍부한 음악회 감상으로 얻게 된 음악적 운율감과 감성은 미술작품 제작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동양화를 전공하였지만, 아마추어 국악 연주자로도 활동한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전통 한국미술과 음악의 상호 연관성과 중요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였다. 개인전 <연향악채보(宴享樂彩譜)>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연향악채보(宴享樂彩譜)>는 ‘연향(宴享)에 흐르는 음악(樂)을 채색(彩)으로 보여주는 악보(譜)’라는 뜻이다. 이 연작은 채색의 겹침을 통해 과거 궁중연향에 사용되던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는 한국전통음악의 헤테로포니(Heterophony) 개념을 조형한다. 헤테로포니는 ‘동시 진행하는 주선율의 변주들 (simultaneous variations of one melody)’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흥적 집단 연주에서 한 선율에 다양성을 주기 위해 발생되었다고도 하는데, 국악의 발전과정과 유사하다.
국악의 대표적인 기악 합주곡 ‘영산회상(靈山會相)’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정악(正樂)이다. 조선의 풍류음악인 영산회상은 악기편성과 조성에 따라 ‘중광곡’, ‘유초신곡’, ‘표정만방곡’ 세 종류로 나뉜다. 특히 ‘유초신곡(柳初曲)’은 궁중정재(宮中呈才)인 ‘춘앵전’의 반주음악으로 쓰이는 만큼 궁중연향에 어울리는 곡이다.
‘연향악(宴享樂)’의 하나인 유초신곡의 음을 시각적으로 풀이하고자 다양한 연구과정을 진행했다. 국악의 기본 12율과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의 12색상환을 연결시켜 채색악보인 ‘채보(彩譜)’를 만들었다. 그리고 채색의 겹침으로 주선율의 변주를 뜻하는 헤테로포니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본인의 다양한 시도는 현대미술의 융합적 측면에서 동양적 미의식의 표현 영역을 확장 시켰다고 본다.
헤테로포니 개념의 확장은 인생을 바라보는 본인의 시각에도 영향을 주었다. 헤테로포니는 각 파트가 모두 주선율을 변형시켜 연주하고 있어, 따로 연주해도 음악이고, 함께 연주해도 그 또한 음악이다. 개인들의 삶도 각자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헤테로포니처럼 연주되었으면 한다. 한 개인의 삶이 다른 이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취급받는 사회가 아닌 각자가 주도적이고 개성적인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개인들의 삶이 모두 존중 받으면서도 공존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